7시가 되자 그리미가 서둘러 아침 준비를 하는데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일어나기가 싫어서 함께 하지 못하고,
아직도 자고 있는 아들들과 달리 씻고 화장실을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 부지런을 떨었다.
마치 곧 떨어질 바위처럼 간이 배밖으로 나와 돌아다닌다.
아침 식사는 돼지고기에 김치찌개를 먹었다.
혼자 또는 둘이 먹기에 적당한 80년대 자취생 집에나 있을 법한 접이식 밥상으로
머리통 부딪혀 가며 맛있게 먹는다.
우리 손으로 오리 집어 넣고 김 매가면서 농사지은 깨끗한 쌀에
찹쌀을 넣은 밥이 맛이 있어서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우주신은 조용히 두 공기를 먹어 치운다.
간사이하우스에 가서 카메라 기종을 바꾼다.
1,250만 화소의 캐논은 벌써 4년 전 모델인 것 같은데,
어찌 됐든 아쉽지만 처음 계획보다 저렴한 51,000불에 구매할 수 있으니 그냥 사기로 한다.
비슷한 가격으로 한국에서는 하이엔드급을 구매하는 것이니
그럭저럭 만족할 만하다. 아니 대단히 만족스럽다.
좋으면 뭐하냐? 하나 아쉬운게 있다. 이 모델은 동영상 촬영이 안된다.
한가하게 동영상 볼 시간이 있겠나 싶고,
흔들리지 않는 화면으로 찍기도 어렵기에 생각이 없었는데,
목소리나 현장감을 재미있게 전달한다면 여행 기록의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주신이 똑딱이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으로 동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다.
오늘은 교토로 진출한다. 전철을 복잡하게 바꿔 타고
- 정말 다양한 모양의 기차를 타 본다 - 시내를 지난다.
대량 생산에 의한 원가 절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굉장히 많은 종류의 기차들이 운행되고 있는 것을 보니 재미있다.
역사가 오래 되고 계속 정비해서 사용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일까 궁금하다.
디자인의 다양성은 선진국으로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을까?
마치 자연이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감정을 지배하듯이
인간의 발명품들로 다양성으로 사람을 즐겁게 해 줘야 자연스럽고 발전된 모습이다.
햇볕이 따사로우니 운동장 마다 아이들이 나와서 야구연습을 하고 있다.
이른 시간이어서 몸을 푸느라고 열심히 공주고 받기 연습을 한다.
야구는 정해진 룰대로 서로의 부딪힘을 최소화 한 스포츠다.
투수나 내야수를 못하면 외야에서 공 오기 기다려야 하고,
타순이 돌아올 때까지 볼보이나 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역시 야구 하는 것이 좋다. 보는 것은 지루할 때가 더 많다.
오직 할 때 재미있다.
투수하면 더 재미있다.
역을 지날 때마다 꽤 큰 운동장이 있고
그곳에서 대부분 야구를 한다. 딱 한곳에서만 축구를 하고 있다.
일본의 야구 열기가 대단한 것을 알겠다.
일단 야구장이 많고 장비를 갖출 수 있다는 것이 부러운 경제력이다.
한 30년 정도 지나면 따라갈 수 있을까?
일단 세금 제대로 내고, 정부가 시민을 위해 세금을 쓰려고 할 때,
그 때 만이 이런 모습이 가능하다.
모든 선진국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삼십년은 보아야 한다.
왜냐고? 민주공화국의 왜곡된 유령이 떠 돌고 있다.
작고 아담한 2층 집들이 소박하게 연결된 창밖의 풍경이
아파트로 연결된 모습에 비해 이국적이다. 드디어 우리나라와 다르다.
아주 빡빡한 전원주택 단지에 와 있는 느낌이다.
한참을 서서 가다 간신히 자리에 앉았는데,
어린아이들이 타 버리는 바람에 양보를 했더니 시작부터 계속 서서 가게 된다.
전철역의 안내 데스크에서 한글로 된 관광지도를 받아서
이리저리 길을 찾아 버스를 타고 헤이안진구 입구에 내려 산책을 시작한다.
날씨가 좋으니 모두들 기분이 좋다.
어제 저녁은 긴장도 되고 날이 추우니 기분도 스산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도리이가 이곳의 상징으로 서 있는데,
붉은색의 촌스러움이 느껴지는데
여기저기에 비슷한 색깔의 칠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보면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깔인 모양이다.
궁 앞에 기모노를 차려입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일가족이 가족사진을 찍는다.
얼른 부탁을 해서 우리 가족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아마도 실크로 만든 옷이라 가격이 비싼 모양이다.
기꺼운 마음으로 사진 촬영에 협조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맙다.
지난 추석에도 곱게 한복을 입은 그리미와 함께 경복궁에를 갔는데,
관광 온 외국인들마다 사진 같이 찍어 달라고 해서 기꺼이 그렇게 했다.
쑥스럽다는 그리미의 입은 거의 찟어질 듯이 웃고 있었다.
그리미의 사생활 때문에 그 사진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정말 아쉽다.
무일은 그 사이에 영어 한 번 써 보겠다고,
"Have a nice trip" 했다가,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로 인사를 받았다.
뭐야 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우는 중인가 보다.
무린암의 작은 정원은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작고
입장료 400엔이 너무하다 싶기는 했지만 참 평화롭게 잘 가꿔놓았다.
이런 정원이 있는 곳에 우리의 집을 마련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아주 오랜 옛날 일본의 어느 경제력이 있는 선비는
이 아름다운 집을 설계하고 자신의 가족, 친구들과 마음껏 즐겼다.
그곳에서 우주신은 두 번이나 낮은 지붕에 머리를 찧어야 했다.
사실 나도 아버지도 그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어야 하는데 너무 각박하고 초조하다.
기요미즈테라의 언덕을 오르다
느닷없이(?) 기모노를 입은 두 명의 여성을 만났다.
순간적으로 우리 아이와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너무나 즐거워하며 환한 웃음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러고 났더니 저 위에서 더 예쁜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이 내려온다.
음... 고맙다.
손이 시리다. 사진기를 든 손이 너무 춥다.
그리미의 손은 여행 안내책자를 들고 길을 찾느라 빨갛게 얼어 있다.
그래도 내 손이 시려운 것을 알고 나서야
오래도록 길 안내를 하느라 고생한 그리미의 손이 보인다.
그 순간에 천재아들이 장갑을 내민다.
자기는 필요 없으니 아빠가 끼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정말로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받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실제로 그 후로 전혀 손이 시리지 않았다.
그리미는 책장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장갑을 낄 수가 없다. 음,,,
그리고 그 따뜻한 장갑은 일본 방문 기념으로 일본에서 두고 왔다. ^^;;;
날이 너무 따뜻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벽에 바짝 붙어있고
선 안에 예리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를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을까 싶다.
그냥 적당히 대어놓고 다른 사람들이 피해가면 될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조심을 해야 하니
한사람이 조심하는 것이 좋겠지.
철학의 길은 깨끗하고 소박하고 아름답다.
작은 강이 흐르고 산책을 위한 작은 길이 있고,
그 아래로는 주택가와 숲이 연결된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그저 평화로운 산책길로 최고다.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은 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절대로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길은 자연스럽기는 한데 투박하여 산만한 느낌도 든다.
이 길을 들어서기 전에
남선사의 아름다운 기와지붕에서 교토 지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궁이든 절이든 신사든 단청이 없어 소박하여 보기에 차분하다.
그리고 회색으로 칙칙한 느낌이 들면서도
명도가 높아 날씨가 조금만 도와준다면 마음이 밝아진다.
달걀 우동, 튀김우동, 치킨 우동, 카레 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날이 추워서 따뜻한 물을 먹으면 좋았는데,
일본은 이곳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얼음을 띄운 냉수를 준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제발, 따뜻한 물 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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