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기심천국/일본여행

일본은 볼 게 없어_일본 오사까 여행(1/16)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니 기분이 좋다.


다만, 여행 준비를 하는 즐거움을 갖지 못해서 여행의 즐거움을 반은 놓쳐버려 아쉽다.

제주항공의 특별가격으로 부담없이 예약한 항공권을 들고,

제대로 된 여행으로는 난생 처음으로 일본으로 향하는 것인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일본에 무슨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며,

음식을 밝히는 체질도 아니라서 

회사에 가지 않고 남들 일할 때 돌아다니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리미는 방학을 이용해서 열심히 책을 보고 봐야 할 것들을 챙겨 두었다.

일본에 다녀 온 처제와 이야기를 나누며 한껏 기분도 고양되어 있다.

가장 알차게 즐기는 사람은,

당연히 여행을 준비하고 현지 가이드까지 하는 그리미일 것이다.


<< 보았는가? 좌석 방향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 - 우주신 촬영 >>


아이들은 공부 안하고, 다른 세계를 본다는 것만으로 즐거워한다.

게다가 새로운 먹을 것들이 있고,

우주신은 타꼬야끼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다.

오오사까의 정통 타꼬야끼를 먹겠다는 것이다.

천재아들은 여권에 또 하나의 입국 도장이 찍히는 것도 좋단다.


아침 식사를 하고 침과 비상용 감기약을 챙겨 들고 나니

더 이상 챙길 것이 없다. 짧은 여행이다 보니 짐 싸는 것도 여유가 있다.

아쉬운 것은 현지 민박집에 부탁했던 카메라가

재고 부족으로 구매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 여행이 준비되자 마자 무일이 한 일은,

일본 아마존 사이트를 뒤져 그럭저럭 괜찮은 카메라를 사는 일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다들 좋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데,

이십여 년째 똑딱이를 들고 다니니 자세도 안 나오고,

사진도 왠지 볼품없이 나온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름신이 강림한 것이 아니라고 하기 위해 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며칠동안 웹서핑을 해서 마련한 그 회심의 승부수가

여행 출발 전에 좌절되고 말았으나,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로 그 아쉬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별난 자기위로다.


김포공항 국제선은 아담하고 여유로웠다.

일찌감치 짐을 부치고 시간이 남아 공항 마트를 가서

초밥세트와 여행용 티슈를 사고, 푸드코트로 가서 점심 겸 간식을 했다.

여행을 가서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왠만한 구경도 돈 아끼지 말고 하자고 다짐하면서 출발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걷고 사소한 것을 발견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비싼 음식이나 상품을 사지 않는 것은 무일의 결정이고,

사소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언제나 그리미의 활약이 컸다.

이번 여행도 이런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출국 수속은 매우 간단했고,

비행기는 뜨자마자 내리는 제주도행 비행기와 같다.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느라 걸린 시간이 창공에 머무른 시간의 전부다.

 

지문을 찍고 얼굴 사진을 찍느라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세관을 나서자마자 전철역과 연결되는데,

간사이 스루 패스 3일권과 오사카 주유 패스 난까이 확장판을 샀다.

무려 2만 9,200엔이 든다.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까지 가는 차비가 1,200엔이 다 되어서

오사카 주유 패스까지 끊었는데, 발급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패스를 끊었으니 그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일의 머리 속은 벌써

바쁘게 돌아가고 있고, 심장은 흥분으로 박동수가 점점 높아간다.

침착하자,,, 잘 쓸 수 있을거야.


지하철은 워낙 많은 기차들이 교차하다 보니 복잡해서 머리가 아프다.

온 가족이 노선도를 보면서 머리를 굴렸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지하철 노선이 10개가 넘는

선진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간사한 일본어 안내 방송을 들으며,

매우 자신 있어 하면서도,

끊임없이 도착하는 역명을 확인해야지만 간신히 안심이 되는,

똑똑한 듯 소심한 우리 가족은 무거운 가방을 끌고

큰 무리 없이 숙소인 간사이 하우스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예약한 6일치 비용을 모두 청구한다.

순간 잘못한 것은 아닐까, 일단 하루 자 보고 결정하는 것이었는데,

숙박비가 굉장히 비싸다는 말에 너무 주눅이 들어

그 중 저렴하다는 이곳으로 너무 쉽게 결정을 한 것이 아닐까?

좀 비싸더라도 항공권 싸게 끊었으니까,

아이들 영어 공부도 시킬 겸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나

백패커스를 이용할 걸 그랬나?

고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간다.


타국에서 애쓰시는 교포에게 너무 그러지 말자 생각하며

6일치를 현금으로 다 치르고 길 뒤편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아파트는 아파트인데,

넷이 몸을 누이면 꽉 차는 여관방 정도의 넓이에 작은 부엌, 

고개도 들지 못하고 몸도 돌리기 힘든 화장실과

그래도 따뜻한 물은 나오는 욕실을 갖춘 1인용 아파트였다.


게다가 불을 때놓지 않아 추운데,

바닥을 덮히는 방식이 아니라 온풍기가 돌아가 난방을 하는 방식이다.

넓은 집 놔두고 좁은 집에서 다섯 밤을 자려고 하니 암담했다.



이러면 안된다. 일단 짐을 풀어 간단하게 정리를 해 두고

패스를 쓰기 위해 오사카 스카이빌딩의 하늘정원을 구경하러 간다.

 

이미 해가 저물고 있는 오사카 시내는 스산하기조차 한다.

관광객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꽤 큰 도시일텐데도 서울처럼 요란한 조명을 하지 않아서인지 어둡고,

날이 꽤 추워서 걸어 다니기에 힘이 든다.

 

하늘정원을 물어물어 찾아 갔더니 전망은 제법 그럴싸하다.

아쉬운 것은 내 카메라로는 도저히 그럴싸한 야경을 담아낼 수가 없다.

도시의 야경은 서울의 아파트 불빛이나

산동네의 백열전등이 만들어 내는 것만큼 멋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높이 173미터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옆 건물로 이동하는 재미,

그 높이의 옥상을 거닐며 시내를 내려다보는 즐거움,

커피 한 잔을 마주하면서

젊은 연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 관광의 즐거움이다.


패스 무료입장이라는 트레이드센터를 가다가 그만 오후 10시가 다 되고 말았다.

문을 닫아서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다시 트램,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본은 역시 볼 것은 없어.. 다 비슷하잖아..

아이들과 그리미는 첫날부터 피곤에 지쳤다.

패스를 사는 순간 이 상황을 예견했을 것이다.

그래도 첫날이니 견딜만 했을 것이다.

 

숙소 앞의 마트 옥출에서 베이컨과 맥주(기린), 콜라, 생수를 사서

비좁은 숙소에 들어가 후라이팬이 없어서 냄비에 베이컨을 굽고

오이에 고추장을 찍어 먹으며 맥주 한 잔을 했다.

콜라 잔이 없어서 아이들은 밥공기를 씻어서 콜라를 따라 건배에 동참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오랜만에 떠나 온 여행이라 즐거운 시간이다. 


2010년 1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