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동안 문제없었던 모기가 어제 한마리가 나타나 괴롭히는 바람에 잠을 설쳤다. 6시에 잠을 깼지만, 7시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해변의 아래쪽으로 간다. 우리 숙소가 운좋게도 사누르해변 한가운데에 있어서 어제는, 북쪽으로 오늘은 남쪽으로 내려간다. 왕복 2시간이 조금 모자라는 아침 산책길이다.
밤새 폭풍이 치더니 아침은 활짝 개어버렸다. 뜨겁다. 모자를 가져온 나와 그렇지 않은 그리미의 얼굴이 햇볕에 익는 정도가 다르다. 게다가 모자는 부채질도 할수있다. 특급호텔주변이 아주 잘 가꿔져있어서 지나면서 기분이 참좋다. 반환점에서는 금요일을 맞아 힌두교예식이 있는데, 일반인은 출입금지인 모양이다.
맑은 바다물빛을 보려고 정자로 나갔더니 젊은 부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인사를 받고 1분짜리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들이 길게 하는 말의 90%는 모르겠지만, 하고 싶은 말은 그들이 잘 알아듣는 모양이다. 한참을 떠든 모양이다. 그늘에서 기다리다 지친 그리미는 숙소로 돌아가고 있다. 부지런히 쫓아갔지만 한참이 걸렸다.
새빨갛게 익어가지고 숙소로 돌아와 찬물에 샤워를 한다. 사흘동안 사용한 샤워기용 간이정수장치가 제법 더러워졌다. 수도꼭지에도 물을 마시면 안된다는 안내문이 적혀있는 것을 오늘 아침에야 보았다. 발리를 위한 준비물중에서 최고가 이 간이정수장치다. 여행끝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잘 가지고 다녀야할텐데.
아침을 먹는데, 우리가 오늘 떠나는 것을 알고 매우 아쉬워한다. 한국어 단어공부를 같이 했다. 밥 - 쌀 - 술 - 물 - 과일 - 안녕하세요 까지는 매우 쉬웠다.
egg가 뭐냐고 묻는다. 달걀 dall gyall. dall 은 chicken, gyall은 egg. 열번도 넘게 반복했다.
한 친구가 묻는다. 한국어로 thanks가 두가지가 있는데, 무슨 차이가 있냐고. 헐. 감사합니다는 중국어로 들어온 말이고, 고맙습니다는 순수한 한국어라고 말했다. 세상에, 이런 질문을 받다니.
빵은 뭐라고 하냐고 묻는다. 빵이라고 했더니, 아 일본어군요. 아니에요. 포르투갈어입니다. 그래요? 처음 알았어요.
그랩을 불러서 우붓까지 이동하는데, 15,000원. 문에서 문으로 이동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발리는 질서가 잡혀있다. 길이 좁고 통행량이 많아서 그렇지, 무리해서 운전하는 사람들이 없고, 기다리고 양보할줄도 안다. 전쟁의 풍파가 없어서인지 오래된 집들도 잘 유지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새벽녘의 그들은 무척 부지런하다.
숙소는 원숭이숲 옆인데, 진입로가 없어서 2km를 돌아서 들어간다. 게다가 진입로는 허걱. 이러저리 눈대중을 하던 기사분이 사이드밀러를 접고 진입한다. 자신있단다. 허걱. 좌우벽에서 5cm를 각각 남기면서 차를 몰고 들어간다. 해냈다. 혹시 다른곳으로 이동할 생각이라면 전화를 달란다. 아메드라고 했더니 좋단다.
체크인을 하고 방이 정리되기를 기다리면서 아메드에 예약한 숙소까지의 그랩비용을 봤다. 허걱, 8만원. 게다가. 다음 행선지인 kintamani로 직접 오는 길이 없어서 다시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급히 숙소의 일정변경을 의뢰했지만 빈방이 없단다. 어쩔수없이 예약취소 요청. 다행히 오늘까지는 무료로 취소가 가능하다고 한다. 한숨 돌렸다.
킨타마니를 갈까말까 무척 고민했는데, 오늘 아침에 만난 발리 부부가 그곳은 서늘해서 지내기 좋고, 온천도 할수 있을것이라고 했다. 그리미는 아침산책으로 더위를 먹었고, 여러모로 산으로 들어갈 명분이 생긴것이다. 그래, 좋다.
귀엽고 통통한 도마뱀들이 천장을 지키고 있는, 이 비싼 숙소의 아침식사는 제한되어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호텔을 이용하고 있는데, 왜그럴까? 내일 아침을 먹어보자.
호텔 수영장에 해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근사하다. 그 불빛을 배경으로 너른 논을 바라다보고 있다. 지난 2월의 후기에 보면 빈논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지금은 파릇한 모가 자라고 있다. 최근 한달이내에 심은 모양이다. 잘 정돈된 논은, 농부의 꼼꼼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인근 주점에 가서 보드카를 사왔다. 500ml 인도네시아 보드카와 700ml 스미르노프가 가격이 같다고 한다. 음, 주인도 스미르노프를 추천한다. 그녀의 말을 따라 스미르노프를 샀다. 호텔에 버섯빈대떡을 주문했는데, 오븐이 고장이 나서 만들수가 없다고 한다. 음, 더 저렴한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재미있는 것이, 볶음밥보다 스파게티가 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방으로 배달되어온 음식을 보니, 그럴만하다. 면이 너무 삶아져서 불었다. 발리에는 너무 많은 호텔들이 있고, 요리사들이 전부 배치되기도 어렵다. 아마도 이동도 잦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진짜 요리사라기 보다는 배우는 사람들일 확률이 높다고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어쨌든 부드러운 보드카와 함께 저녁을 잘먹고 푹잤다.
정말로 단순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