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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아름다운 한반도 여행

여행의 추억, 그러나 백록담 남벽등산로 폐쇄_231004

우주신을 비행기 태워 보내고 났더니 더 쉬고 싶다. 호텔에서 뭉기적대다가, 피곤해서 그랬겠지만 10시 반이 넘어서 절물휴양림을 산책하려고 나왔다. 가는 길에 내일은 뭐하지 하다가 영실로 해서 백록담을 갈까. 그럴려면 오늘 가야지. 차를 영실등산로 주차장으로 돌렸다. 그랬더니 1시간이 걸린다. 헐, 할 수 없다. 백록담은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 어차피 오르지 못할 것이다.

 

가다가보니 산악박물관이라고 관음사 탐방로(?)로 보이는 주차장이 보인다. 백록담을 오르려면 이곳에서 출발해야 하는 모양이다. 백록담까지는 무리가 될 것같아서, 그냥 영실로 간다. 신혼여행 마지막 날, 일찍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영실주차장에서 내려서 백록담을 올라서 장관을 보았다. 그리고 어리목으로 내려왔다. 92년 10월 11일~14일, 난생 처음 엄청나게 멋진 제주도와 백록담 여행을 했다. 그때의 추억을 되새겨보자. 하나도 기억나지는 않겠지만.

 

버스주차장을 지나 거의 2km를 더 산을 오르고 나서야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출발하면 산행이 얼마되지 않는 것 아닐까. 윗세오름까지 1시간 반이면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그래도 긴장은 된다.

 

초반부의 숲길은 나무 그늘이 짙고 가벼운 경사로여서 얇은 옷이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구간이 끝나자 계속해서 오르막일뿐아니라 그늘이 완전히 사라졌다. 등산객의 절반은 외국인들. 인도인 두 명과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 것까지는 좋았는데, 병풍 바위를 지나친 것도 모르고,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잘못된 안내를 했다. 어떻게 하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면 어쩌나?

 

아니었다. 우리는 차타고 올라온 길을 버스정류장부터 걸어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차들이 옆을 스치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숲 그늘이 좋은 산책로였다. 돌아갈 때 차를 태워줄까 하다가 참았다. 왕복 3시간 정도의 산행으로는 한라산을 오른 느낌이 없었을 것이다. 5시간은 넘겨야지. 무사히 여행을 마치기를 빈다.

 

전망대를 오르려다가 하산길에 들르기로 하고 내친김에 윗세오름대피소까지 갔다. 꼭 2시간이 걸렸다. 남벽등산로 입구까지 오르는 길은 13시부터 폐쇄되었다. 아쉽기도 하지만 몸이 덜 피곤하니 좋기도 하다. 주차장 매점에서 한 개 오천원에 구입한 주먹밥을 한 개씩 먹으며 쉬었다. 해가 비치는 곳에서는 너무 뜨겁고, 그늘에서는 너무 춥다. 그늘과 양지를 옮겨다니며 주먹밥과 사과를 먹으며 푹 쉬었다.

 

이제 하산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는 백록담이 훨씬 아름답게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갔더니 백록담과 거의 같은 높이다. 바다가 너무 멀어서인지 뿌옇지만, 멀리 추자도를 비롯한 남해안의 섬들이 낮게 엎드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백록담을 보지 못하는 한라산은, 화강암이 없는 한라산은 뭔가 부족하다. 뭔가 가슴에 깊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오직 파란 하늘만이 감동을 주었다. 먼 바다는 뿌옇게 흐리고, 발 아래 구름은 먼지 덩이처럼 떠다닌다. 

 

고사리를 사러 하나로 마트로 간다. 너무 멀리 가는데, 눈앞에 축산농협하나로마트가 있어서 들어가 봤더니 말린 고사리를 판다. 100g에 19,500원. 4개를 사서 두 개는 삼양동에 보내기로 했다. 두 번의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양이다.

 

숙소를 검색해 봤다. 절물휴양림 숙소를 취소하고 받은 돈 67,000원으로 갈 수 있는 호텔. 제주항 바로 앞에 있는 퍼시픽 호텔. 4성급인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오지 않아서 우리한테 차례가 온 모양이다. 스위트룸 69,000원. 바로 예약을 하고 체크인을 했다. 근처에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서문시장의 신세계가 깔끔하다고 한다.

 

샤워를 시원하게 하고, 바로 앞의 서문시장으로 들어갔다. 작은 시장이다. 젊은이들이 회를 뜨고 있었고, 주인장은 친절한 여자분이다. 고등어회(5만원)를 주문하고 메뉴판을 읽던 그리미가 6만원이면 해물모듬과 회, 지리까지 먹을 수 있다며 바꾸자고 한다. 주인장을 불러 물어봤더니 그게 좋겠다고, 고등어회도 신경써서 많이 주겠다고 한다. 시장 안의 횟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썰어진 음식들이 나온다. 아, 진작에 알았더라면 우주신과 함께 먹었을텐데. 순한 한라산을 두 병이나 기분좋게 마셨다.

 

배가 부르니 야간 산책을 나섰다. 멀리서 목성이 빛나고 있다.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마침 아침에 먹을 샌드위치를 사러 어제 묵었던 오션스위츠의 제과점에 들어가 빵 두 개를 사고, 밖에 나가면 크고 유난히 반짝이는 목성을 볼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은하수가 사라진 하늘에서 가까운 별들을 찾는 재미가 있다.

 

술. 습관이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결혼 이후 술을 계속 마셨다. 마셔야 하는 순간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나의 선택이다. 참으로 어리석은 시간들이었다. 더 시간들을 알차게 써야 했다. 삶도 얼마남지 않았으니, 술을 대폭 줄이고 알차고 보람된 시간을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