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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시

하루의 결산_하루를 위한 시_201003_el tres de octubre el sabado_три Октябрь суббота

                     하루의 결산

 

                                           무일 박 인 성

 

꿈이 많은 하루였다

그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멍하게 따라 웃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책을 읽으려 책을 들었으나

무지만 잔뜩 들어 올려졌다

 

전자책을 읽으려 아이패드를 들었으나

졸음만 잔뜩 들어올려졌다

 

산책을 하려 몸을 일으켰으나

온몸 구석구석에 쌓인 피로만이 들고 일어섰다

 

리코더를 불려고 알토 리코더를 들었으나

가족들의 원성만 높아졌다

 

대금을 불려 정악대금을 들었으나

주독 여파로 입술이 부어 올라 있었다

 

기차여행을 하려고 행선지를 정했으나

코로나 상황이라 침대 위로 가야 했다

 

안산 대부도 길을 가려고 했으나

시뻘건 교통상황이 올라와 있었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동영상을 틀었으나

알 수 없는 외계어가 자꾸만 들린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려고 실비아샘을 만났으나

알함브라 궁전의 기타소리만 떠오른다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하려고 했으나

다른 읽을 거리들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파인만을 읽으려 했으나

맥스웰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토지를 읽으려 했으나

중국인이야기가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아령을 들려고 했으나

타이레놀을 먹어야 했다

 

캐치볼을 하며 아들들과 우의를 다지려 했으나

온라인 게임을 하는 아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했다

 

생태화장실 설계도를 그리려 했으나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가야 했다

 

제주도 비행기표를 알아보다가

한탄강 주상절리길도 걷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정원에 심을 꽃들을 생각하려 했으나

오늘 먹은 끼니들의 설거지를 해야 했다

 

결국 오늘도 수많은 시도 끝에

그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따라 웃다가 잠이 들었다.

 

친구가 보내 준 무등산 서석대 사진. 한 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