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 먼 반대편의 땅 라틴 아메리카. 여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 편견(범죄와 더러움, 이동의 어려움) 때문에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궁금증이 계속 생긴다. 정수일의 세계문명기행을 읽다보니 궁금증이 더해진다. 특히, 잉카 문명(Inca :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황제를 지칭한다)은 페루에 수많은 유적을 남겨 놓았다. 스페인에 정복된 153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고 꾸스꼬를 수도로 하여, 뛰어난 농업생산기술을 가지고 풍성한 농작물을 생산하여 시민들을 배불리 먹였다고 한다. 시민들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하였고, 잘 정비된 도로망이 남북 4,000km 이르는 넓은 제국을 연결해 주었다고 한다. 그들의 농업기술을 보여주는 유적이 있다. 원형 다랑이밭이다.
"(마추픽추에서)꾸스꼬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의 우르밤바강 길이 아니라, 몇가지 신비스러운 유적이 남아 있는 고원길을 택했다. 밋밋한 언덕길을 약 30분간 달려 밀밭으로 에워싸인 해발 3,800m의 고지에 이르렀다. 여기에 바로 유명한 모라이(Moray) 다랑이밭이 자리하고 있다. 모라이는 께추아어(잉카제국의 공용어)로 ‘푹 파인 곳’이라는 뜻인데, 잉카제국시대에 땅을 깊숙이 원형으로 파서 조성한 계단식 다랑이밭을 의미한다.
이곳 모라이에는 대소 4개의 다랑이밭이 있다. (중략)지름이 약 100m(작은 곳은 최소 40~45m) 깊이(높이) 역시 약 100m나 되는 대형 다랑이밭이다. (중략) 대형 모라이일 경우, 상·하층 간의 기온차가 5-10도나 된다. 잉카인들은 이 온도차를 이용해 각이한 기후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농작물과 식물을 길러 냈다. 이러한 유구의 용도에 관해서는 관개수를 이용한 다랑이밭 같은 실용적인 농경지였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의례장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385~6쪽)
잉카문명 이전에 페루에는 나스까 문명이 있었고 기원전 200년부터 600년까지 번성하다가 갑자기 소멸된 문명이다. 페루 남부의 나스까 해안가와 안데스 산맥 사이의 해발 500미터에 특별한 지상화를 남겼다. 나스까의 지상화는 말뚝과 밧줄과 10분여를 날 수 있는 애드벌룬에 의해서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척박한 땅에 농사도 지을 수 없으니 시민들의 놀이터라도 만들어야겠다는 문화민족의 창의성이 발휘된 것이리라. 전쟁과 탐욕이 없는 평화로운 땅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오랜 전통의 아메리카 토착 문명이 하루밤 사이에 그것도 전성기에 불과 180명의 스페인 군대에게 전멸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1492년 콜롬부스의 도착 이래 불과 40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끔찍한 일이다. 500년 동안 로만 가톨릭은 인간에게 무엇을 심어준 것일까. 십자가를 앞세우고 벌어졌던 역사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 시리아에서 역사는 반ㅊ다. 인간은 오직 인간에 의해 살육될 수 있다는 것을.
"황금 약탈은 여기 콜롬비아에서만 자행된 것이 아니며, 잉카제국을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황금산지 곳곳에서 앞다투어 벌어졌다. 우리는 잉카제국의 비운에서 그 생동한 일례를 찾아볼 수 있다. 1531년 1월 ‘황금의 제국’ 잉카(현 콜롬비아와 페루, 에콰도르)의 정복자 삐사로는 180명의 용병과 37마리의 말을 끌고 파나마를 출발해 잉카제국의 북단 도시 뚬베스(Tumbes)에 도착해서는 잉카 황제 아따우알빠에게 면회를 요청했다. 순진한 황제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7,000명의 부대를 이끌고 회견 장소에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스페인 신부가 십자가와 성서를 손에 쥔 채 삐사로의 숙소에 방문해달라고 청한다. 이 오만방자하고 배신적인 행위를 황제는 단호히 거부하면서 신부가 내민 성서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포가 불을 뿜고 매복해 있던 삐사로 병사들이 잉카군을 불의에 기습한다. 이 악랄한 계략 앞에서 잉카군은 괴멸되고 황제는 생포되어 돌방에 갇힌다. 황제와 삐사로는 석방 교섭을 진행했는데, 석방 조건은 황제가 있는 돌방을 채울만큼의 황금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각지로부터 금제 신상이나 장식품, 의자, 방패, 술잔, 일용품 둥이 쇄도해 삽시간에 방은 황금으로 가득 찼다. 그 중량은 무려 순금 6.1톤, 순은 60톤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삐사로의 몰염치한 배신으로 황제는 석방되지 못하고 교수형을 당한다." (515쪽)
볼리비아에 대한 편견도 이번 기회에 수정해야했다. 내 편견은 이렇게 생겨났다. 체가 두번째 혁명의 목표로 했던 곳이 볼리비아다. 9개월에 한 번 꼴로 반복되는 쿠데타와 군부 독재의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시민들의 자유와 번영이 필요한 나라였다. 게다가 체를 체포하자마자 재판도 없이 바로 사살해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볼리비아는 강단이 있었다. 남미에서 처음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이다(1809년). 그 지도자였던 무리요는 1810년 라파스에서 처형된다. 볼리비아의 국가는 "자유 국민은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는다"로 끝난다고 한다.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볼리비아(남미 독립운동의 대부인 볼리바르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의 자원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보자.
"근간에는 미래 선진산업의 기간이 될 가장 가벼운 금속 리튬(lithium) 매장량이 세계 매장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선진국 기업들이 너나없이 눈독을 들이고 있댜 리튬만 제대로 파는 날에는 남미의 빈국 볼리비아가 하루아침에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 필적하는 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면서 말이다. 최근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는 한 다국적 자동차회사가 10억달러의 투자개발계획을 제안한 데 대해 “아직은 우리 국민의 생활이 구차하지만, 우리는 결코 15세기 이 나라에서 발생한 비극을 재연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외국자본이 우리 자신에 속하는 자연자원을 탈취해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표대로(리튬 자원개발을) 진행할 것”이라고 언명하면서 그 제안을 단호히 거부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반식민지의 봉기를 일으키고, 첫번째로 자기 대통령(모랄레스)을 뽑아낸 강골이 이 나라 인디오들인 만큼, 모랄레스의 분연한 결기(決起)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431쪽)
이런 사실들은 근거로 하여 식민지 이후의 아메리카의 역사를 정리해 봤다. 아메리카의 독립은 프랑스 대혁명의 세례를 받은 볼리바르에 의해 20년간에 걸쳐 완수된다. 미국의 간섭과 시민 역량의 한계,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피폐, 산업 기술의 미비 등의 열악한 조건으로 민주주의를 완수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1810년 4월 19일의 베네수엘라혁명 정부가 스페인 총독을 내쫓는 모습은 우리의 419를 연상케 한다. 우리보다 무려 150년을 앞섰다. 볼리바르도 베네수엘라의 스페인계 귀족 출신이다. 단순히 미인이나 석유의 나라는 아니다. 차베스가 기초를 잘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민주주의 역량이 충분하지 못하기에 미국의 정치공작을 잘 이겨내기를 바랄 뿐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대통령을 쿠데타로 몰아내고 들어선 임시 정부가, 반독재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정치 공작에 의한 군부와 독재 정치세력의 결탁이 아닐까 하는 부분이다. 볼리비아의 사태도 예의 주시해야할 상황이다.
1492년 콜롬부스 항해
1519 - 21년 마젤란해협(600km) 개척 / 거친 해협을 뚫고 도착한 바다가 평화로워 태평양으로 명명
1531년 삐사로, 잉카 마지막 황제 처형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808년 나폴레옹, 스페인 침공
1809년 라파스에서 무리요 등이 독립운동 최초로 시작
1810년 4월 19일 베네수엘라 혁명 정부 수립
1822년 볼리바르-수끄레,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키또) 독립
1825년 페루 독립
1830년 수끄레 암살 / 볼리바르 병사
1946 - 56년 아르헨티나 에바 페론 / 군부와 미국의 쿠데타
1953년 카스트로 몬카다 병영 습격 패배
1958년 12월 31일 카스트로 체게바라 헤로니모, 쿠바 혁명정부 수립
1970 - 73년 칠레 아옌데 대통령(피노체트와 미국의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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