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현대소설가들도 잘 모르는데 독일의 소설가 이름을 어떻게 알겠나. 심지어 엘프리데 옐리네크라고 하는 이름을 보고도 성별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속표지에서 담배인지 볼펜인지를 손에 든 사진을 보고서야 비로서 여성임을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최대한 자제해서 읽으려는 이유는, 빠져들기 때문이다.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지금 나의 문제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환상의 세계는 테레비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이나 글은 지금 내가 안고 있는 문제, 농사를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 집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 땅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 등등의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너무 오랜 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나 보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서 계속 생각을 쌓아가고, 문제를 숙성시켜 나가고,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선택하면 그만일 문제이다.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고 해서 금방 답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인생에서 발견하지 못한 더 중요한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속표지에서 발견한 글, 책을 읽게 하기 위해 뽑아낸 글이겠지만 눈길을 끈다.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혹적 마력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이 책이 중요한 까닭은 독서하는 관음주의자의 성애적 몽상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착적 일탈행동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하기 때문이다." (속표지)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싶은 부분을 고르는 것과 읽어 가면서 기록해 두고 싶은 부분을 남겨놓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전체를 아우르고 싶을 때이고, 후자는 부분에 집중하고 싶을 때이다. 부분부분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꼭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찾고 싶을 때는 전자이고, 사람 사는 이야기는 대부분 거기에서 거기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후자다. 지금은 후자로 읽고 있다. 어차피 큰 차이는 없다.
거의 70%를 읽었는데도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지를 모르겠다. 위에서 이야기한 데로 관음증이나 성도착이라도 멋지게 표현했더라면 그런 소설을 읽는 재미라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인내에 인내를 거듭했지만 그녀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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