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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농사 이야기

우렁이들을 믿고 마음편하게 동네산책을 하다_190613 Четверг

빵과 물을 챙겨들고 7시 반에 논에 도착했다. 낫을 빼어들고 즉시 작업에 들어갔다. 오늘 오전 중으로 작업을 끝내려면 논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물높이가 적당하니 논둑이 튼튼하리라고 짐작한다. 논둑을 밟기에는 무릎 상태가 좋지 않다. 사흘 동안이나 열심히 밟아대었으니 이제 쉬어야 한다.


이웃 농부가 지나다가 말을 건다. 논둑까지 나와서 응대한다. 볏잎에 허연 줄이 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후라단이라는 제초제를 어제 뿌렸고 오늘 아침에 논둑에 가 봤더니 지렁이들이 전부 죽어 있더라. 후라단은 농부들이 모를 심기 전에 모판에 잔뜩 뿌리는 제초제다. 예전처럼 맹독성이 아니라 많은 농부들이 애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렁이들은 맥을 추지 못한다.


내가 열심히 밟아대고 있는 논두렁을 바라보며 이 근방의 논두렁들은 상태가 매우 좋다고 한다. 저수지 아래 쪽의 높은 논둑들은 이리저리 무너져 아수라장이다. 누구도 논둑밟기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초제를 대충 뿌려두면 논둑에 구멍을 내는 지렁이, 땅강아지, 드렁허리 등이 모두 죽기 때문에 논둑밟기가 필요없기도 하다. 그러나 제초제에서 살아남은 들쥐나 두더지들이 만든 물구멍을 제때 발견하지 못하고 이틀만 지나면 논둑이 터진다.


이유가 무엇이든 작년부터 열심히 논둑을 밟아주었더니 논둑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올 초에 논에 물을 댈 때, 굴삭기 작업을 너무 신뢰한 덕분에 논둑이 물러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년부터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물을 대면서 논둑밟기를 병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굴삭기로 논둑 누르는 작업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논둑 쌓기를 해야 할까. 물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하면 물구멍을 완벽하게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할 시간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낫으로 중간 논둑의 절반을 정리하고 잠시 쉬다가 병원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다. 청각 장애 진단에 관한 절차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부천의 세종병원은 오전 진료밖에 없으니 11시 전에 와서 접수하란다. 앗, 일을 멈춰야 했다. 한 시간 만에 논에서 철수하면서 논바닥을 보니 심하게 풀이 돋아난 일부 구역을 제외하고는 풀이 거의 없다. 우렁이들을 보지 못했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좀 더 열심히 일해서 내가 손을 봐야 할 좀 더 큰 풀들을 제거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늦은 아침을 먹고 아버지와 함께 딜라이트 보청기에 가서 청각 검사를 받았다.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장애 진단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일단 안성의료원에서 청각 검사를 받기로 했다. 꼭 5년 만에 보청기 왼쪽이 고장이다. 상태가 좋지 않은 왼쪽 보청기의 수리를 맡겼다(다음 월요일에 연락이 왔는데 수리비가 23만원이 든다고 한다. 고치지 않기로 했다. 새 보청기를 구매하라고 한다. 글쎄다. 하나 당 15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인데 기껏 5년만에 망가진다면 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농원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우렁이들이 일을 잘 하고 있고, 물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소식을 전해주셨다. 마음이 참 편안하다. 그리미와 함께 13,000보 동네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