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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서재

예쁜 처녀가 맑은 물에_하이네_아타트롤 2_170304

68%의 사람이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탄핵 기각을 예상해 본다. 5:3 정도로.


가장 큰 근거는 삼성이 개입된 뇌물 문제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는 삼성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고, 삼성의 후계 구도를 잘 짜 주는 것도 경제 살리기의 핵심이라고 재판관들이 판단할 근거가 충분하다. 물론 그것을 판결의 요지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과 기업들의 돈으로 설립된 재단이 대외활동을 시작하면 본래 취지에 맞게 문화 융성을 추진해 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뇌물죄가 부정될 수도 있다. 활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최순실이라는 친구의 의견이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해서 비리의 온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그렇게 함부로 돈을 내지도 않고, 전경련을 비롯한 단체들도 재단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울 수도 있다. 


두번째로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보면, 헌재는 헌법을 기준으로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관들 고유의 신념을 가지고 심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에 대한 협소하고 박약한 해석, 한국의 절대 이념은 반공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재판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작은 잘못들은 있었지만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개성공단 폐쇄 등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정책을 펴 온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수행 능력이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이 벌어지는 동안 시술을 받았든 드라마를 보았든 수다를 떨었든 상관없이 대한민국을 보위하는 국가 원수의 직책을 잘 수행하고 있는 대통령을 탄핵해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이 조금 달라지면 엄청난 행복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는데 말이다. 하이네가 아주 냉정하게 말해 준다.


그리 멀지 않은 데서 나는

그 가련한 눈이 소록소록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중략)

내가 만일 산꼭대기에 떨어지지 않고

저 아래 골짜기

꽃이 만발한 골짜기에 떨어졌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는 녹아

졸졸 시냇물이 되어 흐를 것이고

마을에서 제일 예쁜 처녀가 와서

나의 맑은 물에 얼굴을 씻고 웃을 터인데


(중략)

제발 진정하게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진주의 행복을 누린다네 어쩌면

그대가 시궁창에 떨어져

오물을 뒤집어쓰지나 않을까 염려되네


- 아타 트롤 제17장 중에서


하이네의 서문은 강렬했으나 시에서 느끼는 것들은 적은 점이 아쉽다. 같은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에 1840년대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앗시리아의 시조라는 '님로드'를 언급한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다음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창세기 10장에 힘센 사냥꾼으로 등장한다고 하며, 앗시리아를 님로드의 땅이라고 했기에 시조이거나 민족의 이름이라 추정하는 모양이다. 쐐기 문자 기록에는 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하이네가 이런 인물을 시대를 대표하는 사냥꾼으로 꼽았을까 궁금하다. 괴테와 세익스피어를 비판하다가 호된 악평을 받게 되는 인물도 주요하게 등장한다. 근거없이 지성을 비판하여 여론을 호도하면 역풍을맞는다는 의미일까. 하이네를 향해 비판의 화살을 쏘는 비판자들도 결국 그들 비판자들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경고로 읽혀진다.


그중에는 괴테도 있었는데

맑고 빛나는 눈을 보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괴테는 헹스텐베르크로부터 혹평을 받아

무덤 속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살아 있을 땣럼 지금도 여전히

이교도들과 수렵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중략)

말에 가끔씩 박차를 가하며

위대한 작가 세익스피어는

나귀를 타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가련한 프란츠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진다.


- 아타트롤 제18장 중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하이네의 가슴을 가장 뛰게 한 것은 놀랍게도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한 살로메의 어머니 헤로디아다. 죽임으로써 사랑을 쟁취하려 한 여인.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왕비의 미친 사랑은 또 무엇인가. 사랑은 그렇게 폭풍처럼 오는 것이겠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은 지독한 증오와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다. 사랑을 대하는 자세, 주는 것이어야지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녀는 영원히 두 손으로

세례 요한의 머리가 올려진 접시를 들고

거기에 입을 맞추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정열적으로


그것은 한때 요한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성서에는 이런 사실이 나오지 않지만

백성들 사이에서는 헤로디아의 피묻은

사랑의 전설이 살아 있다


- 아타트롤 제19장 중에서





하이네의 시대는 아직도 암흑 속에서 가톨릭의 고위직들이 왕과 귀족들과 함께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운 기독교인들을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세례자 요한을 죽게 한 헤로디아를 사랑함으로써 가톨릭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두려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디아나는

그리스도가 낮을 지배하는 동안

로마냐 근처의 옛 성당

폐허 속에 숨어 살면서


오직 캄캄한 밤중에만

감히 밖으로 나와

그녀의 친구들인 이교도들과

수렵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요정 아분다도

기독교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중략)


아름다운 여인 헤로디아여!

나를 사랑해 다오 나의 연인이 되어 다오!

(중략)


그렇다 낮이 되면 나는

사랑하는 이의 무덤가에 앉아 울 것이다

(중략)


그때 마침 지나가는 

나이 든 유대인들은 내가 

성당과 예루살렘의 붕괴를

슬퍼하고 있다고 확신할 것이다.


- 아타트롤 제20장 중에서



36개의 소국으로 분열된 조국 독일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조소한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들의 싸움으로 국가의 근본인 시민들은 도탄에 빠져있다. 혁명의 성공이 곧 상황이 개선은 아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처럼 '주여 황제를 보살펴주소서'를 노래하며 죽음을 향해 전진하면서 배워야 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고 공화제인 모양이다. 


바지는 마치 바보들 사이의 우정처럼

내 다리에 충성스럽게 달라붙어 있었다


"마른 잠옷 한 벌만 갖다 줘 그러면 나는 그 대가로

서른 여섯 개의 왕을 줄 테니까!"


- 아타트롤 제21장 중에서


프랑스 대혁명과 파리꼼뮌의 실패는 아타트롤의 죽음과 같다. 그들의 실패와 죽음이 현대 민주주의의 불을 밝히게 되었지만, 야만의 시대에 그들은 패배 속에서 희생될 수 밖에 없었다. 시 속에서 불멸로 살아있든 없든 꼭 한 번 밖에는 살 수 없는 개인들에게 너무나 커다란 아픔이다.


아타트롤은 경향적인 곰으로서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정력이 넘치는 남편이었고

시대정신의 유혹에 빠져

숲속에서 뛰어나온 쌍뀔로뜨였다


춤은 볼품없었지만 고상한 신념이

털투성이 그의 가슴에 깃들여 있었으며

가끔 악취를 강하게 풍기기도 했고

재능은 없으되 인격은 있었다!


- 아타트롤 제24장 중에서


우리나라에서 이제는 이런 이야기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이야기를 읽을 때나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주 머나 먼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 기쁘고 반갑다. 우리들이 뽑은 대통령을 우리들이 탄핵할 수 있는 시대에는 이런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를 알지 못할 것이다. 하이네의 시대에는 흔했을테지만.


그때마다 나는 수심에 잠겨

쉴러의 시귀를 떠오리고는 했으니

"시 속에서 불멸의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지상에서 제일 먼저 사라져야 한다!"


- 아타트롤 제25장 중에서



아타트롤의 아내 뭄마와 아프리카의 왕 무어는 일상의 행복을 얻는 대신에 자유와 자유를 위한 싸움을 버렸다. 불쌍한 아타트롤은 아내 뭄마와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패배하고 목숨을 잃으며 전설의 영웅이 되었다. 무엇을 택할 것인가는 나의 의지에 달렸고, 세상은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는다. 


눈처럼 하얀 

시베리아산의 거대하고 억센 곰과

지나치리만큼 다정하게

사랑수작을 하고 있는 한 마리의 암콤이었다


(중략)


정말이지 꼭 고향에 사는 기분입니다


어쩌다 그녀는 잔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해골바가지에 둘러싸여

북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달밤이면 그녀는 다정다감해져서


- 아타트롤 제26장 중에서


 

하이네는 강하고 직접적으로 자신이 비판해야 할 것들을 비판했다. 구시대의 위선에 찬 종교의 경건주의를.그런데,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는 이해를 바란다. 또한, 부르조아지들처럼 세상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과 자유롭고 풍요로워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소수의 부르조아지들에게만 그것들을 허용한다. 이 현실과 맞서 싸운 아타트롤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시대가 변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 인간이 시대를 책임질 수는 없다.


마음이 너그럽고 온화한 사람에게

나는 이 시를 맡기고 싶다


(중략)

시대가 바뀌면 새도 변한다!

새가 변하면 노래도 변한다!

나의 귀가 바뀌면 틀림없이

그 노래도 유쾌하게 들릴 것이다!


- 아타트롤 제 27장 중에서


아타트롤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정치풍자시라고 했으니 당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는 이 시를 거의 이해했다는 날이 오기는 올 것이다. 야만의 시대가 끝나가는 시대를 살면서, 시민들의 힘에 의해 야만의 시대가 끝나가는 과정을 알고 싶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다. 또한, "세상은 여전히 야만스러운데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과연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2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좌절과 희망의 이야기를 이해해 간다면, 아마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때쯤에야 이 시도 거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결코 경향문학을 반대한 적은 없었다. 그가 반대했던 것은 현실의 대지를 떠나 공상적인 세계를 노래하거나 인간과 생활의 구체성을 현실의 변화 발전 속에서 폭넓고 깊게 파악하여 그것을 예술적인 형상화를 매개로 하여 노래하지 않고 일면적이고 직접적으로 토해내는 그런 문학이었다." 

(김남주의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