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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음악이야기

오케스트라를 관람하는 자세_151123 C537

전문연주자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하고, 음악을 즐기는 사람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습을 거듭한다. 그렇게 연습한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한다.

 

연말도 가까워 오고 있으니 좋은 공연을 보고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최근 2~3년은 허접한 뮤지컬과 수준 낮은 연극, 지루한 현악 5중주로 인해 즐거움을 얻지 못했었다. 친구로부터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관람권이 두 장 있다고 해서 얻었다. 우주신과 함께 가려고 표를 샀더니 5만원부터 23만원까지 하는 엄청난 가격의 음악회였다. 음, 정말 고마운 일이다. 시골의 농부에게 이런 표를 선물해 주다니. 제일 저렴한 표로 한 장 구입했다.

 

공연은 매우 좋았다. 

 

첫곡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제목과 작곡자는 모르겠는데, 귀에 익숙한 곡이었다.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고 지휘자가 들어와서 인사를 정중하게 하는 듯 하더니, 휙 돌아서서 순식간에 몰아쳐 간다. 매우 경쾌했다.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박자가 너무 빨라서 지휘자든 누구든 실수를 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이 그런 일은 없이 신나게 첫곡이 마무리되었다. 얼굴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두번째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매우 익숙한 곡인데다가 혹시나 해서 유튜브로 여러 차례에 걸쳐 들어보았다. 1악장은 좋았고, 2악장부터 거의 가라앉는 분위기라 졸음이 올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음, 긴장을 해야겠군. 피아니스트 김혜진은 우주에서 날아온 듯한 은빛 찬란한 복장으로 피아노에 앉는다. 내가 더 긴장이 된다. 걱정했던 2악장도 현장감 때문인지 졸지 않고 잘 들었다. 그랜드 피아노 아래로 쉼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발을 보며 감상했다. 손가락이 보이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었다. 그녀와 오케스트라는 끊임없이 대화를 한다. 그 대화를 들으며 눈을 감고 쉰다.

 

세번째 곡은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작곡가의 이름만 익숙하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곡이다. 지난 주에 유튜브로 여러 차례 들어 보았다. 괜찮았다. 1악장, 2악장 모두 좋았고, 콘트라베이스 독주로 시작되는 3악장(아마도)의 첫 부분은 매우 환상적이었다. 저 덩치가 저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구나.

 

관람하는 내내 두 가지 걱정을 했다. 틀리면 어쩌나. '거인'의 초반부에 트럼펫 파트가 무대 바깥에서 연주를 하고 올라오는 부분이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삐익하고 잡소리가 섞였다. 연주자들이 보이지 않으니 반주 테이프를 틀다가 실수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문을 열고 세 명의 주자들이 들어온다. 아, 원래 이렇게 연주하는 것이구나. 그러면 틀린 것은 아니겠지.

 

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도 매우 걱정이 되었다. 젊은 데다가 얼마나 열정적인지 그 좁은 지휘대 안에서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대는데, 혹시 발을 헛딛지나 않을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의 격렬한 동작 위에서 나타나는 손동작은 4분의 3박자의 삼각형일 뿐이다. 바람이 꽉 찬 공이 통통 튀면서 삼각형을 열심히 그려댄다. 저러다가 박자 놓치고 엉뚱한 파트를 찌르면 어떡하지. 가슴을 졸인다. 두 시간 내내 그는 춤추듯이 축구를 하듯이 뛰어다녔다. 공연은 끝났다. 다행이다. 콜롬비아에서 나고 비엔나에서 음악 공부를 했으며, 독일에서 상임지휘자의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모르는 앵콜곡으로 장식되고, 십 분 이상 계속되는 박수에 손바닥이 아플 즈음 연주자들이 철수한다. 머리가 허연 두 비올라(아마도 바이올린과 구별을 못하겠다) 주자가 젊은 단원들을 일일이 격려하며 연주회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신구의 조화. 평화로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