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보건소에서 농한기 4개월간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오카리나 강좌를 열었다. 스무 명이 넘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강좌는 세 분이 참석한 마지막 수업으로 막을 내렸다.
자격증은 없다.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이 있고, 국립국악원에서 3개월의 소금 단기 과정과 1년의 대금 전문 과정을 수료했다. 리코더를 수년 간 연습했으며, 2년 전부터 오카리나를 집중 연습했다. 음악 이론은 중학교 때 철저히 공부한 덕분에 부족하지 않았으며, 든든한 두 아들이 언제나 뒤를 받쳐 주었다.
작년 여름에 보건소장님을 만나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오카리나 강좌를 열고 싶다고 말씀 드리면서 논의가 시작되었고, 12월 농한기가 시작되면서 강좌가 열렸다. 소장님과 생각한 이 강좌의 기대효과는 이렇게 거창했다.
먼저, 부는 악기는 노인들의 폐 건강에 도움을 준다. 오카리나는 리코더 보다는 강한 호흡을 필요로 하고, 대금이나 소금 보다는 약한 호흡으로도 연주할 수 있다. 칠순이 넘어 선 노인들에게 과도한 움직임의 에어로빅이나 평범한 노래 교실과는 다른 새로운 건강 강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8박자에서 12박자까지 길게 이어지는 연주를 계속하게 되면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여건만 갖춰지면 교육 전후의 폐활량을 비교하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둘째로,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주거나 따뜻한 물로 마사지 하는 것을 권장함으로써 손발이 저린 질환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보건소에서 파라핀을 이용한 손 마사지기를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해 드리고, 핸드 크림도 지급해서 더욱 좋은 결과를 기대하게 하였다.
셋째로, 끊임없이 악보를 암기하게 하고 손가락을 움직이게 하여 치매 예방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아이들은 열 번이면 외울 악보를 어른들은 백 번을 반복해도 쉽게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하다 보면 반드시 외울 수 있는 악보가 나오고, 그런 악보들이 축적되면 기억력 향상을 가져오고 뇌의 퇴행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넷째로, 노인들에게 새로운 문화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다.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이 좋은 세상을 좀 더 마음껏 누리실 수 있도록 오카리나라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해 드린다면 보람찬 일일 것이다.
어려웠지만 어르신들도 새로운 악기를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먼저 악보 보는 법을 다시 배우셨다. 너무 오래 전에 학교를 다니신지라 어렴풋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떠올리시며 다장조의 악보를 떠듬떠듬 읽어가셨다. 반복된 설명으로 서너 분은 악보 읽는 재미를 알게 되셨다. 악보를 못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오선지 아래에 계이름을 써서 한글 악보를 만들어 드렸다. 더불어 어려워 하셨지만 매번 한 가지씩 음악 이론을 반복해서 설명을 드렸다. '#도'와 'b레'가 같다는 것을 이해시켜 드릴 수 있었다.
혼자서 연주하는 것을 즐기게 되셨다. 노래도 그렇지만 악기를 연주하게 되면 남들 앞에서 발표회를 해야 한다. 교육을 하면서 다른 분들 앞에서 독주를 하시도록 매번 요청을 드렸다. 독주를 해야지만 한 분 한 분의 문제를 알아서 고쳐 드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고 하시던 분들이 날이 갈수록 자신있게 독주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역시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연습을 하시며 은근히 실력을 자랑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기뻤다. 그러나, 연습이 부족해서 자신있게 연주를 못하시는 분들은 독주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셨다. 결국 독주를 즐기려면 스스로의 연주 실력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교육 참가자 모두가 여자분들이었다. 금왕읍내에서 운영하는 모든 노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에 할머니들은 왕성하게 참여하신다. 팔순이 가까워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다만 할아버지들은 풍물, 서예, 탁구, 당구 등의 제한적인 프로그램에만 참여하신다. 마을 단위로 내려오면 그나마도 참여하시는 분이 없어져 버리니 안타까운 일이다. 남자들이 나이가 들수록 사회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60대 초반의 할머니들은 오카리나 연주에 쉽게 적응하셨다. 악보를 보거나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반주에 맞춰 연주가 가능하시다. 그런데, 60대 후반의 할머니들은 손가락이 굳어져서 오카리나처럼 작은 악기도 잡을 수가 없었다. 교육을 시작하면서 한 분 한 분의 손을 잡고 상태를 살펴 보았는데, 다소 거칠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악기를 잡고 지공을 막아가며 연주를 해 보니 암담한 상황이 벌어졌다. 손끝의 감각으로 오카리나의 지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구멍을 막았는지 안막았는지를 느끼지 못하신다. 게다가 손가락 사이도 거의 벌어지지 않아 두 세 개의 지공을 함께 막지 못한다. 피식 피식 새는 소리가 계속 나온다. 그나마 70대의 할머니들 중에서 두 세 분 정도가 꾸준히 교육에 참가하면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내시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할 것이다. 이런 분들의 예를 보면 시간은 걸리지만 꾸준히 하신다면 70대에도 오카리나는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어느 정도 실력을 쌓게 되자 오카리나 동호회로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복병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나오시지 못하는 분들이 늘어난 것이다.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들이 아직도 현역이시다. 아쉬운 마음으로 12월 농한기를 기약하며 강좌를 접게 되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강좌를 진행하면서 무일의 실력은 부쩍 늘었고, 암기하는 악보도 대폭 늘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트롯트의 명곡 '내 나이가 어때서'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 중의 하나였다.
한 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었다. 비브라토 주법이다. 대금이나 리코더와는 달리 뱃심을 이용한 비브라토 주법은 지난 2년 동안의 연습 기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아서인지 자연스럽게 배어나오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네 달의 경험이 자산이 되어 어느 누구에게라도 오카리나를 가르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에 없을까, 나와 함께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싶은 사람이.... 얼치기 연주자에게 이런 자리를 허락해 주신 내곡보건소의 박은숙 소장님께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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