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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천국/영상과 함께 하는 호기심 천국

김용옥의 동경대전_211116 el dieciséis de noviembre el martes_шестнадцать Ноябрь вторник

이제 도올도 많이 늙었다. 학계의 분파를 세우려 하지 말고, 공부의 길을 잡았으면 자기 하고 싶은 데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대로 그는 살았다. '어린 중생'이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떠랴.

 

김용옥의 동경대전 강의는, 70%는 딴소리고 그 딴소리도 전부 따져봐야 하는 괴로움이 있지만, 그의 '동학에 대한 오래된 애정과 찬탄'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고, 그의 강의를 들으며 동경대전을 읽는다. 책을 사는 것이 노학자에 대한 예의겠지만, 책의 위치는 도서관이 좋다는 것도 소신이기에, 예의와 부담감을 밀쳐둔다. 어쩌면 돈의 논리가 도덕의 논리를 내 속에서 눌러버린 것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도서관에서 아무도 대출하지 않았다는 동경대전 두 권을 빌려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I. 서장 : 도올과 동경대전

 

도올은 오랜 유학세월을 끝내고 고려대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 중에 하나가 동경대전을 강독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양윤석, 윤석산 등과 함께. 특별히 삼암장 표영삼 선생과.

 

1. 삼암장은 이북 출신의 동학교도로, 동학의 발자취가 깊게 새겨진  전라, 경상, 강원도의 현장을 두루 걸으며 답사하는 것을 커다란 기쁨으로 알았다. 

 1-1) 해월이 수운을 찾아가 교리를 듣는 용담까지의 70리길을 걸어서 답사했다.

 1-2) 참형을 당한 수운의 시신을 수습하고 대구에서 용담까지 향하는 길을 걸어서 답사했다.

 1-3) 삼암장이 1세대 사람이 아니면서도 1세대의 전승을 체화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2. 삼암장의 생각

 2-1) 동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다. 밥이 곧 하느님이다. 그 말을 따르고 실천한다.

 2-2) 동경대전은 문자로 읽어가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읽어가는 것이다.

 2-3) 을묘천서는 천주실의다. 모든 신화를 배격한다.

 2-4) 교주는 없다. 선생님 즉 선생주다.

 

3. 수운 최제우의 깨달음에서 죽음까지의 과정

 

 3-1) 1864년 죽음

 3-2) 1863년 용담龍潭에서 파접하고 공개 활동

  가. 1862년부터 실시한 접주제도를 스스로 폐기(파접)하고 공개활동을 하며, 죽음을 준비

  나. 해월 최시형에게 깨달은 내용을 기록하여 전수 : 믿을만한 오직 한 사람에게

    ㄱ) 수심정기(守心正氣) : 올바른 기운을 간직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하라.

    ㄴ) 용담의 물이 흘러 천지의 근원이 될 것이요, 검악에 사람이 있어 변하지 않을 것이로다.

           : 용담수류사해원 龍潭水流四海源 검악인재일편심 劍岳人在一片心

  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왜곡되지 않는 것이다. 단 한 글자도 고치지 말고 출판하라.

 3-3) 1861년 깨달음을 알리기(포덕) 시작 : 1862년에 접주제도 실시 

 3-4) 1860년 깨달음 : 바울이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도 3년동안 광야에서 수행한 것처럼, 득도한 후 1년 동안 스스로 깨달은 내용을 검증한다.

 

도올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집중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하고 싶은 데로 이야기하도록 놔두고, 내가 스스로 알아서 잘라주면 된다. 뭐 어떠냐, 그가 신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철학자로서 대접받고 싶은 욕심조차 버린다면 좋겠지만, 인간은 그렇게 완벽할 수 없다.

 

도올의 관점이 반짝반짝 빛날 때가 있다. 그가 빛을 내고 있는 부분을 잘 잡아서 내것으로 만들 수만 있어도 행복한 공부 인생이 될 수 있으리라. 최근 3일 동안 읽는 동안 발견한 부분은, 사람은 깨달음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정하고, 정한 삶의 방향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과학은 아니어서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다'라는 열린 자세를 견지해야 하지만 말이다. 수운에게서 도올이 발견해 전해준 것이다.

 

깨달음은 사상의 원천이며 사상이다. 케인즈가 동경대전을 읽지 않았을테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사상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이유는, 언젠가 경제학자나 철학자가 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는데, 살면서 공감이 누적되어 자기의 생각이 되고, 그 생각대로 실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주류가 이렇게 공감 - 생각 - 실천을 하게 되면, 그 사회를 움직이는 사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사상이다. 사상의 원천은, 깨달음이다.

 

"수운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해방'이었다. 인간을 자기가 창도한 조직 속에 '가두려는'의도가 전무했다. 그가 포덕을 시작하면서 먼저 한 것이 (중략) 그가 데리고 있던 두 여노비를 해방시켜 하나는 첫째 며느리로 삼았고 하나는 수양딸로 삼은 일이다." (26쪽)

 

빗나간 이야기까지 포함해서 모든 문장을 기억해야 할 정도로, 니이체는 스스로의 문장에 취해 전부 다 외우라고 했다지만, 이야기가 즐겁고 유익하다. 십년 전의 나는, 300쪽이 넘는 책에서 하나의 깨달음이라도 얻어 취하자고 결심했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말로 좋은 책과 강의는, 읽고 - 이해하고 - 확인하고 - 외워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할 수 있다면 통째로 외우고 싶었다. 물론 이룰 수 없는 욕심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좋은 책을 읽는 자세와 훌륭한 강의를 듣는 자세는, 중요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하다가 안되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조지훈이 말한 삼교의 단점을 정리하면, 유교는 운영의 묘가 없고, 불교와 유교는 사람사는 세상을 부정한다. 한국의 종교는,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열린 종교이며, 신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살게하는 종교다.

 

동학에 대해 제일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서학에 대한 반대의 개념으로서 동학이라 이름지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해동지국의 철학이기에 동학이라고 명명했다. 우리나라의 학문이 곧 동학이다.

 

"시인 조지훈은 '한국사상의 근거' 라는 호쾌한 글을 게재했는데, (중략 / 최제우는) 유교는 명절에 구니하여 현묘의 역을 모르고, 불교는 적멸하여 인륜을 끊고, 도교는 자연에 유적하여 치평의 술을 모르니, 이 삼교의 단소를 버리고 장점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중략) 이들은 지상천국의 건설에 3대 개벽을 전제한다. 첫째, (중략) 정신개벽. 둘째, (중략) 민족해방 (중략) 셋째, (중략) 인류평화와 상호부조" (64~5쪽)

 

II. 대선생주 문집

 

수신제가한 집안. 도올은 최진립이 세운 수신제가 집안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찬한다. 최진립에서 시작되어 최제우와 경주 최부자집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의 존재가 과연 저들 어린 생명들에게 강렬한 도덕성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인가?" (88쪽)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서 4대까지 내려왔다. 극심한 대립이 존재하고, 완전히 다른 정신세계에 살고 있다. 모르기는 몰라도 일부 가족들 중에는, 바로 앞선 세대조차 부정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물론 삶의 과정 속에서 부모도 떨쳐버려야 한는 일은 발생할 수 있다. 공동체 의식이 자꾸만 엷어져 가는 세상에서, 집안의 문제는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좋은 것은, 집안의 삶이 내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가족의 전체 삶과 개인의 수신의 삶이 하나일 때, 분명히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최진립은 임란이 일어나자마자 의병을 일으켜 수없는 대첩을 하였고, (중략 / 1636년) 용인 험천의 고개에 이르러 청나라 대군을 맞이하여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하였는데 언덕 위에서 청나라 군사들의 활을 온몸으로 막아내어 고슴도치처럼 되어 쓰러졌다고 한다. (중략 / 셋째아들) 최동량에서 최기영으로 내려오는 계보가 바로 (중략) 경주 최부자댁의 가계라는 사실이다. (중략) 넷째 아들 계열에서 우리나라 정신사의 최대 거봉이라 말할 수 있는 동학이 나왔으니, 집안에 한 사람의 명예로운 삶과 정의로운 죽음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절감케 한다." (85~87쪽)

 

동의하든 안하든 도올이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과제. 다른 과제들은 제껴두고 나이들어 교회나 성당의 그늘로 들어가는 것은, 주체로서의 생각을 포기하는 어쩔 수 없는 행위다. 나이들어 보니 판단력도 흐려지고, 말이 통하는 친구나 가족도 없어서, 갑자기 하느님의 나라가 있지 않겠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인간이, 이 의심과 두려움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상황이 기실 알고보면 기독교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청년이 있다면, 그는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일 것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정치적 퍼내티시즘 fanaticism, 극렬한 우파적 성향, 서구문명에 대한 굴종, 미국에 대한 비열한 의존심 dependency, 신화적 사유에 대한 맹종, 합리적 삶의 분실, 초월적 허구에로의 귀순 귀의, 과학적 사유를 관철하지 못하는 허약성, 그리고 내 나이 또래가 되면 모두 길 잃은 양이 집 찾아 돌아가듯 예수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무릎 꿇는 비굴함, 단군의 자손으로서 이 땅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갖지 못하는 노예근성 등등, 이 모든 병폐가 알고보면 기독교라는 외래적 정신토양과 관련되어 있다." (110~1쪽)

 

여기까지 읽다가 답답해졌다. '대선생주 문집'을 읽고 있는데, 도올이 번역한 것은 맞는데, 누가 쓴 것이지. 한문 원본이 누구의 것이지. 도올은 학자의 입장에서 판본해석을 거의 100쪽에 걸쳐 나열하고 있는데, 그래서 내린 결론이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그것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야겠다.

 

'대선생주 문집'을 읽는 이유는,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을 읽기 전에, 수운 최제우 선생님의 일대기와 깨달음의 과정을 알기 위해서다. 그러면 누가 대선생주 문집을 썼나?

 

1. 강수가 '최선생문집도원기서'를 썼다 : 해월 최시형이 수운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은 모든 내용을 토대로 대전을 펴내기 위해 '강수'로 하여금  동학의 역사와 내용을 기록한 것이 '최선생문집도원기서'다.

 

2. 강수의 '최선생문집도원기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최선생문집'은 동학의 내용 즉 경전에 해당하는 것이고, '도원기서'는 동학의 역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3. '도원기서'는 '최선생문집'의 3배 분량에 해당하며, 해월의 포교활동이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위험하게 여겨져 공개 출판을 하지 않기로 하고, 동학의 핵심 인물들에게 나뉘어져 보관되었다.

 

4. '최선생문집'이 동경대전이다.

5. 도원기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수운의 이야기와 해월이 이야기로.

6. 도원기서의 수운의 이야기 부분이 따로 편집되어 '수운행록'으로 정리되기도 하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고, '대선생주문집'이라는 제목으로 정리되는 것이 맞다.

 

7. 강수가 쓴 '최선생님문집도원기서'에서 '최선생님문집'과 '도원기서'가 나왔다.

8 . '최선생님문집'은 동경대전이다. 강수가 해월로부터 받은 수운 선생의 경전을 옮겼기 때문이다.

9. '도원기서'는 강수가 기록한 수운과 해월의 이야기다.

10. 박하선은 해월로부터 수운의 장례와 일대기 집필의 의뢰를 받는다.

11. 영해접주 박하선이 '동경대전'과 '도원기서'와 모든 자료를 모아 '대선생주 문집'으로 수운의 일대기를 정리한다.

 

도올의 동경대전 중에 지금 읽고 있는 대선생주 문집은, 수운이 포접제를 시행하면서 임명한 영해접주 박하선에 의해 집필되었고, 박하선은 '영해 교조신원운동' 때 동학의 괴수로 지목받아 고문을 받고 죽는다. 이제 좀 정리가 되었다.

 

 

"「대선생주문집」은 내가 생각키로 최수운 그 인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며, 박하선이 죽기 전에 이 세상에 남긴 소박한 사람 최제우의 삶의 기록이다. 나는 이 문헌의 가치를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하여 우리말로 번역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 문헌에 대한 갑론을박은 무의미하다. (중략) 그런데 이 문헌은 현재 본문도 번역문도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다. 내가 여러 판본을 고찰하여 원문의 본 모습을 살리고 내 양심과 능력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성실한 역과 안을 감행하여 나갈 것이다." (81쪽)

 

120쪽이 넘게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운 선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대선생주문집에서 정리한 수운의 현재까지의 일대기를 정리해 본다.

 

최진립 장군의 11세 손으로 태어나 아버지 슬하에서 조선의 유학경전을 열심히 공부했다. 열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삼년상을 치르면서, 세상의 모든 사상을 공부했으나 쓸만한 사상이 없어서, 무술 공부를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몸을 단련한다. 20세 무렵에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십여년간 장돌뱅이 생활을 하며 민중들의 삶과 새로운 문물들을 접하였다. 그러나 생활은 별로 나아지지 않고, 여시바위골에 논 여섯 마지기를 마련할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아내의 고향인 울산 여시바위골로 가서 무기력한 생활을 하는 도중에 천주실의를 보고 천주님을 알게되고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는 등 중요한 자극을 받는다(을묘년 1855 천서사건). 여전히 생계가 어려워 여섯마지기 논을 담보로 빚을 내고 투자를 받아 제철소를 시작했으나, 기도를 통해 천주를 만나는 일에 빠져듬으로써, 제철소는 망하고 삶은 더욱 고난에 처한다. (정사년 1857 철점사건)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투자자 일곱 사람 중의 한 노파와 다툼을 벌이다가 노파를 죽이게 된다. 사실 이 노파는 가사상태에 빠져 있어서 수운이 가서 되살려내는 기적을 행한다(무오년 1858 노파사건). 그러고도 삶은 여전히 척박하여 용담으로 되돌아간다(기미년 1859년).

 

기이한 삶의 기록이다. 이렇게 짧은 내용을 해석해주고 설명해 주기 위해 도올은 125쪽을 할애하고, 뜬금없이 보헤미안 랩소디까지 해석해 놓는다. 수운은 삶의 고통 속에 가장 깊이 빠져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해석한다.

 

"생계에 매달리다가, 죽음과 삶의 기로를 너무도 드라마틱하게 체험하는 수운, 그 수운은 실제로 '살인자'가 될 뻔했다. 'Mama, just a killed a man.' 그런데 그 좌절, 그 곤궁, 그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에서도 그는 결국 사람을 살리는 '신명의 인간'이라는 명성을 얻는다. 수운에게 '하늘님'과의 만남은 더욱더 절실한 과제상황으로 발전해간다. 천주와의 맞대결, 그것은 그의 삶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122쪽)

 

수운이 득도한 순간은, 조카의 잔치날이었다. 5년 이상의 공부와 기도에도 응답이 없던 천주께서, 속세의 가장 번잡한 환갑 잔치날에 수운을 맞이하러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님은 속세 속에 있어야 하고, 민중들이 만드는 축제를 가장 기뻐하신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늘님이 오셔서 기쁜 것이 아니고, 민중들의 가장 기쁜 날이 하늘님이 가장 기뻐하는 날이다. 하늘님도 기쁘고 민중들도 기뻤으니 만나려고 한다면 이때처럼 좋은 시기가 없는 것이다. 경신년 1860이다.

 

(to be continued like reading a new testament)

 

강주미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며, 동경대전을 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