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푹 쉰 덕분에 잘 일어났다.
렌트카는 어디가서 빌릴까? 고민하다가 포르투에서 쓴 Cael을 다시 쓰기로 했다.
시원시원하게 결제가 잘 된다. 24시간 단위로 렌트를 하는 것이라 내일 아침 11시 반에 반납이다. 좋다.
신트라의 페나 궁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끊임없이 차를 세우라는 삐끼들이 있다. 조금 겁이 났지만 무시하고 계속 갔다. 매표소 앞에 주차장이 있다. 직원에게 물으니, 이곳은 임시주차장이고 아래쪽에 넓은 주차장이 있단다. 괜히 겁먹었다. 삐끼들 정말 무섭다. 길도 위험한데, 계속 손으로 X표를 그리며 안된다고 하니 마치 무슨 잘못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이 운용하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토바이나 전기차를 타고 올라가게 하려는 것이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사기다.
매표소 앞에서 한국 청년들을 만나서 물어보니, 궁전은 궁전이란다.
우리는 궁전 안은 보지 않고, 주변의 공원만 걷기로 했다.
매표소앞에 줄을 서면서 보니 인터넷으로 표를 사면, 2유로 정도 싸다. 급히 스마트폰을 열고 표사기를 시도했지만, 깊은 산속이라, 한국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이지만, 실패했다. 그래, 합계 4유로 더 쓴다.
입구에서 페나궁전까지 산길을 걸어오른다. 걷기만 해도 좋은 것이, 이미 입장료를 받을 정도로 정성들여 가꾼 정원 때문이다. 궁 주변을 돌며 사진도 찍을수 있어서 아쉬움이 없다. 사진이 잘 나오는 예쁜 궁전이다. 예쁜 옷들을 차려입고서 귀여운 모습으로 사진찍는 모습을 보니, 보기에 좋았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났더니 배가 고프다. 산책로에는 사람이 많지 않고, 경치 좋은 곳에 벤치들도 잘 만들어 놓았다. 벤치 하나를 골라 앉아 준비해온 볶음밥과 된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먹을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최고의 맛이다. 보온밥솥안의 따뜻한 볶음밥을 한숟가락 퍼서 오물거리면, 포도당이 녹아들면서 기분을 좋게 만든다.
점심을 먹고 산길을 걷는다. 저 앞의 청년이 나무를 이것저것 살피며 언덕위의 십자가로 오르고 있다. 우리도 그를 따라 힘들거나 편안한 발걸음을 옮긴다. 소박하고 꾸밈없는 왕궁과 산책로다. 길을 편안하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자연의 방해로 산책의 즐거움이 줄어들지도 않는, 잘 어우러진 산책로다.
1시간 넘게 산책을 끝내고 입구로 내려간다. 날이 좋았으면, 대서양을 멀리 내다보며 무어의 성까지 산책을 할 생각도 있었는데, 뿌연 안개가 끼어서 먼 바다의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다 좋을수는 없다. 이곳까지 온김에 호카곶도 봐야하니 이제 그만 내려가자.
호카곶으로 출발. 꼬불탕거리는 길에서 멀미가 나지 않도록 천천히 달린다. 백두대간에 길들여진 한국사람들이라면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다. 겨울철이어서 그런지 차들도 많지 않다. 멀리 보인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소박하고 멋진 모습이 펼쳐진다. 포르투갈에 와서 처음 춥다는 생각이 들어 옷을 단단히 여미었다. 절벽을 안전장치 거의 없이 개방해 놓아서 정말 겁없는 정부로 받아들여진다. 작은 사고라도 났다면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을텐데 말이다.
혼자 여행하는 친구가 우리 둘을 위한 사진을 찍어줘서 좋은 기념사진도 얻었다. 등대 남쪽의 암석 절벽길을 걷고 나고 등대 북쪽의 초원절벽길도 걸었다. 오금이 절인다. 곧 해질 시간인데다가 계속되는 한달 가까이 계속되는 절벽길에 위축이 된 모양이다. 저 아래까지는 도저히 못가겠다. 그리미가 오히려 더 용감해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늘의 일정이 잘 끝난 것에 대해 고마움의 기도를 한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 대서양으로 떨어지는 햇님이 만들어내는 붉은 노을을 본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해서 포도주 한 병을 잘 마셨다. 기분이 좋아서 한 잔 더 마시는 바람에 남은 포도주가 너무 적다. 내일도 마셔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