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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_231008 domingo, ocho de octubre_Воскресенье, восемь Октябрь

전혀 알지도 못하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라는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박사학위 논문을 꼭 읽어야 하는 것일까? 이해는 할 수 있고, 정리해서 기억해 낼 수는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면서도 읽기 시작한다. 유대인이면서 무신론자였던 마르크스는 예나대학에서 1841년에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미래의 장인에게 이 논문이 헌정된다.

 

[ 1장 ] 논문의 대상 Gegenstand der Abhandlung

 

철학 뿐만아니라 그리스라는 나라도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가 경제위기와 함께 이천년만에 '내 앞에' 나타났다. 어쩌면 10년 전에 터키여행의 부록으로 그리스 여행을 하면서 다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리스가 로마제국의 일부로 편입된 순간부터 먼 역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사라져버린 이천년 때문에. 사라진 이천년을 되살린 것은, 바이런을 비롯한 유럽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이 오스만투르크를 밀어낸 결과다.

 

"그리스 철학은, 훌륭한 비극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될 것, 즉 예기치 못했던 단조로운 종말을 맞았던 것 같다."(29쪽)

 

젊은 마르크스의 현란한 언어 구사에 현혹되지 말고, 핵심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대자연의 위대한 모습을 이해하기 보다는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에서 대자연을 느끼듯이, 중심을 잡고 그의 유희에 동참하다보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웅은 해가 저무는 것처럼 서서히 죽어가지만, 간웅의 죽음은 팽창한 개구리 배가 터지듯 갑작스럽다. 

 

"모든 사람들이 탄생과 성장과 소멸이라는 철의 순환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것은 확실히 평범한 진리다. 따라서 그리스 철학이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그 정점을 이룬 후 시들어 간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영웅의 죽음은 팽창한 개구리 배가 터지는 것이 아니라 해가 서서히 저무는 것과 같다." (30쪽)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에 죽었으니까, 에피쿠로스는 50년이 지난 후에 태어나서 알렉산더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다.  잘 요약해 두었기에 일단 인용하자.

 

"에피쿠로스(영어: Epicurus, 그리스어: Έπίκουρος, 기원전 341년 사모스 – 기원전 271년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 학파(Epicurianism)라 불리는 학파의 창시자다. 에피쿠로스는 300여 권 저술 활동을 했는데, 그 가운데 몇 권만 전해진다. 알려진 에피쿠로스 학파 철학 대부분은 후대 추종자나 해설자에서 유래한다.

 

에피쿠로스에게서 철학의 목적은 와아하고 happy 평온한 삶을 얻는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와아하고 평온한 삶은 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무통(無痛, aponia)의 특징이 있다. 그는 쾌락과 고통은 무엇이 좋고 악한지에 대한 척도가 되고, 죽음은 몸과 영혼의 종말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은 인간을 벌주거나 보상하지 않고, 우주는 무한하고 영원하며, 세상의 모든 현상들은 궁극적으로는 빈 공간을 움직이는 원자들의 움직임과 상호작용으로부터 나온다고 가르쳤다." (위키백과 중에서)

 

링크드 인에 쓰여진 성병호의 글도 에피쿠로스에 대해 잘 요약되어 있다.

https://www.linkedin.com/pulse/%EC%97%90%ED%94%BC%EC%BF%A0%EB%A1%9C%EC%8A%A4-byungho-sung/?originalSubdomain=kr  

 

에피쿠로스

쾌락과 행복에 관해 생각해 보자면, 그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막연하기도 하고 두루뭉수리하기도 하다. 언뜻 쾌락이라고 하니,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여러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kr.linkedin.com

 

 

자기를 의식한다는 것이야말로 참된 학문이다. 이렇게 요약해야겠다. 구구절절이 문장이 긴데, 그렇게 서술해서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해서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와 회의주의학파까지 모두 자기를 의식한 학문을 했고, 그것이 마르크스가 생각하는 참된 학문이다.

 

"자기의식의 모든 계기들이 완전하게 나타나는 것 (중략) 철학의 조물주였던 소크라테스에게 체화되었던 성격이 (중략) 참된 학문으로 주장되었던 것은 우연일까?" (31쪽)

 

전체를 두룽뭉실하게 관찰하여 차이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친일이라는 의식이 그렇다. 일본과 친하다는 것은, 가치판단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친일은 좋은 일이다. 일본과 친하게 지내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런데, 친일이라는 커다란 생각을 만들어내는 작은 영역의 생각들 속에 반사룸 anti-life, 반인륜, 나만 살고 보자는 끝 모르는 탐욕,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생각들이 있다면, 친일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친일을 불러오는 그 작은 생각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누구나 알 수 있다. 친일도 친일다워야 친일이고, 그것을 알려면 작은 생각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학 사이의 뿌리깊은 차이, 가장 작은 부분에까지 관통하는 그 차이가 증명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값진 일이 될 것이다. 작은 것 안에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더 큰 차원의 관계들이 포착되는 곳에서는 더욱 쉽게 보여질 수 있다. 그렇지만, 반대로 아주 커다란 부분에 대한 일반 고찰로부터 시작할 때는 그 결과를 개개의 것들에서 확증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32쪽)

 

[ 2장 ]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학의 관계에 대한 판단들

 

에피쿠로스는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의 제자였으므로 원자론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당시 수준으로는 더 발전시키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찰과 추정을 통해 더 나아가려고 애를 썼겠지만. 키케로 역시 두 사람의 자연학 지식을 비교 평가할만한 기준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과감하게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키케로 뿐만아니라 플루타르크, 교부들, 라이프니츠까지 에피쿠로스를 "그리스 철학의 모든 오류를 가지고 있어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34쪽) 철학자이면서, "에피쿠로스를 따르면 행복하게 살 수 없다"(34쪽)고 무시한다. 도대체 왜?  

 

"그가 가장 뽐내는 자연학에서 에피쿠로스는 완전한 문외한이었다. 그가 내세운 자연학의 대부분은 데모크리토스의 것들이다. 그는 그것들을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려 했지만 결과는 데모크리토스로부터 벗어났을 뿐아니라 더 나쁘게 되었고 망쳐졌을 것이다." (키케로, 33쪽)

 

이런 비난들 속에서 한 가지 받아들일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에피쿠로스가 그의 자연학을 데모크리토스로부터 빌려왔다"(35쪽)는 점이다.

 

[ 3장 ]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동일성에 대한 난점들

 

< 첫번째 차이 : 우리의 지식은 확실한 진리인가? >

 

데모크리토스의 이성은 참 뛰어나다. 어떻게 원자와 허공이라는 생각을 해냈을까? 원자와 허공이라는 진리는, 실제 세계를 관찰하여 얻은 것이므로 현실은 분명히 참된 실재다. 다만, 감각을 통해서 참된 실재가 부정되기도 하는 모순을 극복하지 못했다.

 

"데모크리토스는, 현상은 참된(실재하는) 것 (중략 / 이 주장과  모순되게) 진리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샘의 깊은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중략) 진정한 원리들은 원자들과 허공이며, 그밖의 다른 모든 것들은 자기만의 의견과 가상에 불과하다. (중략) 원리들은 이성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것들이 눈으로 접근하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것들은 심지어 이념들(이데아)로 불리기도 한다. (중략) 참된 실재는 변동하는 불안전한 현상들이다. 현상들이 참된 실재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중략) 데모크리토스는 감각한 현실을 주관의 가상으로 만든다. (중략) 그래서 데모크리토스는 이율배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36~38쪽)

 

데모크리토스는 뛰어나고, 에피쿠로스는 현명하고 유연해 보인다. 확신이 클수록 진실과 멀어질 확률이 높다. 하나의 전제가 없다면, 그렇다. 확신하되, 마음을 열고 확신한다면, 진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진리가 아직 너무 멀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은, 애매하게 말하라는 뜻이 아니다. '~ 같아요'가 아니라 '~이다. 그리고' 이렇게 열린 확신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아갈 수 있다.

 

비슷한 능력으로는 비슷한 능력을 극복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본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고, 감각으로 받아들인 세계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개인의 견해나 '주관으로 만들어진 가상 - 주관의 가상'이 될 수 없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이렇게 어렵게 풀어낸다.

 

"현자는 회의하면서 행동하지 않고 확신을 갖고 행동한다. (중략) 모든 감각들은 진리의 전달자다. (중략) 감각 지각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종의 것(감각)은 동종의 것을 동등한 타당성 때문에 부정하지 못하고, 또 이종의 것도 (즉 다른 감각도) 이종의 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동일한 것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 두 감각이 판단하는 대상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 그리고 개념 역시 부정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 역시 감각 지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에피쿠로스의 진리 기준은 감각 지각이고, 그것에는 객관 현상이 조응하고 있다." (38~9쪽)

 

마르크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데모크리토스는 뛰어나기 때문에 태양의 커다란 크기를 측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늘 아쉬웠다. 에피쿠로스는 방법이 없다면, 일단 현재 측정할 수 있는 크기로 일단 받아들이자고 한다. 데모크리토스의 태도 때문에 세마science가 발전할 수 있었고, 에피쿠로스의 태도 때문에 수많은 모순 속에서도 사람은 와아하게 살 수 있었다. 세마의 끈을 놓지않고도 와아happiness가 충만한 현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세마학자scientist이며 기하학에 정통한 사람이므로 그에게 태양은 큰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에피쿠로스에게 태양은 2피트 정도의 크기로 보일 것이다. 그는 크기란 보이는 것만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9쪽)

 

< 두번째 차이 : 학문과 철학은 우리를 어떻게 편안케 하는가? >

 

세계를 관찰하고 경험하여 얻은 것은, 들여다 보거나 들을 수 없으니 오직 직관과 통찰로 얻은 것은, 원자와 허공으로 구성된 세계다. 원자와 허공으로 구성된 세계의 실존하는 모습을, 원자와 허공으로 설명할 수 없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데모크리토스는, 진리라는 지식의 내용을 채울 수 없는 한계를 인식하여 철학을 버렸지만, 실재 세계가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고, 진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관찰과 경험을 축적하여, 채울 수 없는 진리인 원자와 허공이라는 진리는, 직관 또는 통찰로써 계속해서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원자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없고, 세상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니,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데모크리토스에게 원리는,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고 실존을 갖지 못한 채로 있지만 (중략) 세계는 주관의 가상인데, 그 이유는 그것이 원리로부터 떨어져나와 자신의 독립된 현실 안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계는 동시에 고유한 실재하는 대상을 자신의 가치와 의미로서 가지고 있다. (중략) 철학에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실증 지식의 품안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우리는 일찍이 키케로가 그를 '박식한 사람' vir eruditus라고 부른 것을 안다. (중략 / 이집트, 페르시아, 홍해, 인도까지 여행한) 그를 잠시도 쉴 수 없게 한 것은 한편으로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겠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중략) 진리에 대한 불만, 다시말해서 철학의 지식에 대한 불만족이었다. 그가 진리로 생각한 지식에는 내용이 없었고, 내용이 있는 지식에는 진리가 없었다. (중략) 데모크리토스는 감각 시력이 정신의 날카로움을 가리지 않도록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39~41쪽)

 

원자와 허공이라는 진리가 비록 증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여 살아간다면, 진리 위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학문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니, 에피쿠로스는 경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철학과 데모크리토스의 자세로 학문한다면, 와아한 인생이 펼쳐진다.

 

"너는 철학으로 인해 진정한 자유가 너의 몫이 되게끔 철학에 종사해야 한다. 철학에 자신을 내던지고 종속시킨 이는 기다릴 필요없이 즉시 해방된다. (중략) 에피쿠로스는 여러 학문을 경멸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지혜의 참된 완성에는 아무런 기여도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마science의 적, 문법을 경멸하는 자로 불렸다. (중략) 교양이 없고 무지한 사람은 에피쿠로스가 아니라 오히려 이 시절에 모르면 창피했을 그런 것을 나이를 먹어서도 여전히 암송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41쪽)

 

세계를 설명하고 싶었던 데모크리토스는, 알면 알수록 모순이 생기는 지식들이 감각에 의한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눈을 멀게하여 이성을 지키려했다. 실제로 실명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와는 달리 손제자였던 에피쿠로스는 세계 지식의 충만함을 즐기고, 지식의 한계도 기억하며, 고통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에서 죽어갔다. 두 개의 삶을 하나로 합쳐서 살아간다면 부족한 것이 없을 듯하다.

 

"데모크리토스는 지식 획득에 절망하고 스스로의 눈을 가려버리고 말지만, 에피쿠로스는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을 느끼며 따뜻한 목욕을 하고 순수한 와인 한 잔을 들면서 그의 친구들에게 철학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42쪽)

 

소크라테스 이전의 학자 중 박식한 사람이었던  데모크리토스가 평생동안 연구하고 발표했던 책자들의 제목을 한 번 읽어나 보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다. <대우주론>, <소우주론>, <우주지>, <행성에 관하여>, <자연에 관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지성에 관하여>, <감각에 관하여>, <영혼에 관하여>, <맛에 관하여>, <색에 관하여>, <원자의 다양한 움직임에 관하여>, <형태 변화에 관하여>, <천체 현상의 원인들>, <대기 현상의 원인들>, <불과 불타는 것에 관하여>, <청각 현상의 원인들>, <자석에 관하여>, <씨앗과 식물과 열매의 원인들>, <동물에 관하여>, <하늘에 대한 기술>, <지리학>, <극에 대한 기술>, <기하학에 관하여>, <기하학적 실재들>, <원과 구의 접선에 관하여>, <수론>, <무리수 선분과 입체에 관하여>, <투영>, <천문학>, <천문표>, <광선에 관하여>, <반사된 상에 관하여>, <리듬과 하모니에 관하여>, <시에 관하여>, <노래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화음과 불협화음에 관하여>, <호메로스에 관하여>, <표현과 언어의 정확함에 관하여>, <말에 관하여>, <이름에 관하여>, <가치에 관하여 또는 미덕에 관하여>, <현자의 특징이 되는 성향에 관하여>, <의학>, <농업에 관하여>, <그림에 관하여>, <전략론>, <대양의 주항>, <역사에 관하여>, <칼데아의 사상>, <프리기아의 사상>, <바빌로니아의 신성 문헌에 관하여>, <메로에의 신성한 문헌에 관하여>, <질병으로 인한 열과 감기에 관하여>, <아포리아에 관하여>, <법적 문제들>, <피타고라스>, <추론의 규준에 관하여>, <확증>, <윤리의 논점들>, <와아happiness에 관하여>, 이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원본이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재구성한 것들이다. 일신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데모크리토스의 이성론과 자연주의 유물론은 허락되지 않았다. AD 390~39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의무로 칙령한 이래로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모든 학교가 폐쇄되고 기독교 교리에 맞지 않는 모든 문서가 방대한 규모로 기독교국가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영혼의 불멸을 믿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용인되었다." (위키백과 중에서)

 

< 세번째 차이 : 필연과 우연에 관하여 >

 

데모크리토스가 필연에 빠진 것은, 당연하다. 원리로 세계를 설명할 수 없으니, 원자와 허공의 운동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 아닌 설명을 하는 것이다. 설명할 수 없으니,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필연을 주장하는 필연이다.

 

"데모크리토스는 현실에 대한 반성 형식으로 필연을 사용한다. (중략) 필연이란 운명이자 법이며 섭리이자 세계의 창조자다. (중략) 사람은 스스로 우연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중략) 그 이유는 우연은 건강한 사유와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42~3쪽)

 

에피쿠로스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에게라도 기대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어한다. 비참한 과거와 현재가 운명이라면, 미래도 볼 것이 없다. 불안정한 우연은, 우리의 뜻에 따라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고, 하다못해 제우스라도 끌어들여 미래를 바꿔야 한다. 그래야 살만하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이 만물의 지배자로 받아들이는 필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떤 것은 우연하게 생겨나고, 어떤 것은 우리의 자의에 의존하고 있다. 필연이란 확실하지 않으며, 반대로 우연은 불안정한 것이다. (중략) 필연성 안에 사는 것은 하나의 불행이지 필연은 아니다. 자유를 향한 짧고 쉬운 수많은 길들이 열려 있다. (중략) 필연 자체를 제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허용된다." (에피쿠로스, 43~4쪽)

 

마르크스는 다시 데모크리토스로 돌아와서 필연 - 인과론 - 결정론을 연결한다. 필연이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고, 이유가 있다면 결정된다. 세계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데모크리토스가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었던 것들은, 인과론 - 결정론 - 필연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필연은 유한한 자연안에서 '조건 필연', 결정론으로 나타난다. 조건 필연은 실재 가능성으로부터만 연역될 수 있다. (중략 / 데모크리토스) 나는 페르시아의 왕관을 얻기보다 하나의 새로운 인과관계를 발견하고 싶다." (45~6쪽)

 

에피쿠로스는, 감각된 세계가 추상 세계와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든 추상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다. 망원경도 현미경도 탄소동위원소도 없는 상태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유연한 자세가, 세마science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의 자유를 넓게 보장했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별의 실체, 태양의 크기와 형상에 대한 논쟁에 대하여 에피쿠로스는) 여러 견해 가운데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으며 모든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중략 / 세네카는) 에피쿠로스는 수많은 원인들 중 하나만이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비난하는데, 어림짐작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을 명백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무모하기 때문이다. (중략 / 마르크스는) 존재의 우연은 사유의 우연으로 옮겨진다. 에피쿠로스가 부여하는 단 하나의 규칙인 '설명이 감각 지각에 모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추상으로 가능한 것은 정확히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안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모순은 피해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46~7쪽)

 

마르크스의 정리에 따르면, 데모크리토스는, 감각의 오류를 경험의 축적으로 보완해 감으로써 실제 세계를 설명하는 노력이 계속된다. 에피쿠로스는, 감각된 모든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모든 것은 우연이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포용의 힘을 키워준다. 데모크리토스의 방법론으로 나아가되 에피쿠로스의 자세를 견지하자. 상호보완이다.

 

"감각된 자연을 주관의 가상으로 보는 회의주의자이자 경험주의자는 그것을 필연의 관점에서 파악하여 사물의 실재 실존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 현상을 실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철학자이자 정설가는 모든 곳에서 우연만을 보며, 그의 설명 방식은 오히려 자연의 모든 실재성을 지향하는 경향을 띤다."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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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장 ] 직선으로부터의 원자의 편위

 

키케로가 설명하는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읽으며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설명도 잘했고, 비판도 잘했다. 다만, 근거가 약하니, 무슨 소리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찰과 경험을 토대로 한 추론이니, 증명되거나 부정될 수 없고, 받아들이냐 마느냐의 문제다. 신념의 문제처럼 들려서 왠지 이상하지만, 관념론과 유물론의 경계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것이 아닐까?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이 무게로 인해 아래로 직선 운동을 하며, 이 운동은 물체의 자연스런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곧 그에게는 만약 모든 원자들이 위에서 아래로만 움직인다면 - 확정이며 필연이 될 것이므로, 어떤 원자도 다른 원자와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거짓말을 했다. 그는 원자가 아주 작은 이탈 - 사선운동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는데, 물론 이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원자들 간에 서로 복합체, 조합체, 응집 등이 생겨나고, 이로부터 세계와 세계의 모든 부분들, 그리고 그 내용물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미숙한 창안물이다." (키케로, 71~3쪽)

 

하늘에 떠서 움직이는 달을 보면, 허공이 느껴진다. 달이라는 실체와 허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으니, 원자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와 허공도 그려낼 수 있을 것같다. 누군가는. 그런데 좀 이상하다. 천체와 원자의 성격이 비슷하거나 같다면 운동도 같거나 비슷하게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천체는 규칙을 갖고 일정하게 움직인다. 그렇다면 원자도 규칙을 갖고 일정하게 운동해야 한다.

 

그런데, 낙하운동이 자립운동이 아니라 상대운동이라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원자는 순수하게 자립한 물체 혹은 천체처럼 완전 자립한 것으로 인식되는 물체다. 그렇지만 원자는 천체처럼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고 사선으로 움직인다. 낙하운동은 자립 운동이 아니다.  (중략 / 원자는) 서로 다른 운동으로 표상되고, (중략 / 사선운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최소한의 공간에서 일어난다. (중략 / 편위의 원인을 묻는다면) 원자가 모든 것의 원인이고, 그 자체의 원인을 갖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없는 물음이다. (중략 / 원자는) 자립성과 타자에 대한 모든 관계의 부정" (75~8쪽)

 

마르크스 : 1818~1883.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공산당 선언 발표. 1859년 '종의기원'와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발간. 1864년 제1인터내셔널 참가. 파리꼼뮌. 1867년 자본론 1권 발간. 엥겔스의 추모사.  the greatest living thinker ceased to think. 훌륭한 친구보다는 먼저 죽어야 한다. 

 

2023년 10월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역사의 변곡점으로 기억되거나 잊혀질 것이다. 그런데, 잊혀진 선거가 있을까? 잊혀지지 않더라도 양방향 모두 가능하다. 기대를 표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재 상황을 반영한 예측이어야 한다. the heaviest living drinker is ceasing to drink.

 

무엇이 우선하여 선악이 세상에 퍼져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현실에서 선을 실현하려면 악으로부터 도망쳐야 하고,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면 쾌락을 얻는다. 심심함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추구하는 쾌락과는 분명히 다른 에피쿠로스의 생각이다. 괜찮지 않은가? 그런데도 마르크스 이전의 이천 년 동안에 에피쿠로스는 끊임없이 비난받아왔다. 그러면서도 살아남은 것은, 비난하면서도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의 진솔한 마음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은 악으로부터의 탈주고, 쾌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78쪽)

 

에피쿠로스의 신에 대한 규정도 대단하다. 신이 무엇이 답답해서 사람사는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겠는가? 그저 자신만으로 완벽한 존재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일은, 사람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최선의 존재는 그 자체가 자신의 목적이므로 아무런 행위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는 개념이 바로 완전한 신이다.

 

"최고의 자유와 자율 안에서 (중략) 모든 현존재들로부터 벗어나는 현존재가 나온다. 이러한 이유로 신은 세계로부터 벗어나 그것에 관여하지 않는다.(중략) 와아한 평화에 만족하고, 어떤 기원에도 귀기울이지 않으며, 우리와 세계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미와 위엄, 그리고 뛰어난 본성 때문에 자신들을 자랑스러워 하고, 어떤 것도 더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78쪽)

 

"에피쿠로스는 충돌의 핵심을 포착한 첫번째 사람이다. 반면에 데모크리토스는 단지 그것의 실존에 대해서만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에피쿠로스에 의해 적용된 충돌의 여러 형식들도 발견할 수 있다. 정치영역에서는 계약, 사회영역에서는 우정이 최고의 선으로 칭찬된 것이다." (82쪽)

 

[ 2장 ] 원자의 질들

 

청년 마르크스의 학위논문을 읽으며, 나는 많은 부분들을 지워야 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을 지워버렸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스피노자와 마르크스가 일갈한다.

 

"스피노자는 무지는 어떤 논증도 아니라고 말했다. 무지가 증명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고대학자들의 문구들을 지워버린다면, 우리는 얼마나 빨리 백지상태로 돌변할 것인가!" (84쪽)

 

이렇게 서술되는 부분들을 토대로 해서 에피쿠로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이해할 수 있다. 이성을 통해 통찰한 것을 서술한 부분도 이와같이 분명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하지 않다면, 과감히 지워가며 이해하려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이 세개의 질들, 즉 크기, 모양, 무게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두개의 질, 즉 크기와 모양만을 말했다. 에피쿠로스는 세번째 질로 무게를 덧붙인 것이다." (플루타르크, 84쪽)

 

크기가 작은 것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두 학자들은 몰랐다. 그래서 생각의 방향이 갈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우선 원자들은 크기를 갖는다. (중략) 데모크리토스가 분할 불가능한 자연의 원리들로 이성을 통해 지각할 수 있는 물체들을 가정했다 (중략 / 크기를 갖는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원자들이 발견될 것이고, 크기가 없다면 그것들이 아무리 모여도 어떤 크기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 모순을 인식하지 못했고, 그것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반면 에피쿠로스는 그것을 주요한 관심사로 삼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87~8쪽)

 

원자들은 한정된 수의 모양을 가지고도 세계의 수많은 모습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에피쿠로스의 직관이, 데모크리토스의 직관을 넘어섰다. 에피쿠로스가 두세대 뒤의 사람이니 관찰과 추론도 조금이나마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이 차이를 갖는 것은 명확하고 한정된 수의 모양에 의해서다. 이로부터 원자들만큼 많은 수의 다른 형상들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지는데, 데모크리토스는 이와 달리 무한한 수의 형상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모든 원자가 특정한 모양을 갖는다면 무한한 크기의 원자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88쪽) 

 

데모크리토스가 무게를 원자의 본질로 생각하지 않은 것에 비하여 "에피쿠로스가 무게를 세번째 질로 고려한 것이 가장 중요 (중략) 원자들은 천체들처럼 그들 스스로 중력의 실제 중심들이다." (89쪽)

 

다시 마르크스의 정리. 나로서는, 세마의 발전은 데모크리토스의 물질과 현상에 대한 집착으로 이루어졌고, 통찰은 에피쿠로스의 모순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에 의해 확립될 수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본질과 실존 사이에서 원자 개념이 갖는 모순을 객관화했고, 그래서 원자에 대한 세마science를 제공했다 (중략) 반대로 데모크리토스에게서는 원리 자체의 어떤 실현도 없었다. 그는 단지 물질 측면에 집착했고, 경험 관찰을 위한 가설들을 제공했을 뿐이었다." (90쪽)

 

[ 3장 ] 아토모이 아르케와 아토마 스토이케이아

 

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