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제하는 것이다_160921
아파트 청소하시는 분이 바뀌셨다. 부디 즐겁게 일하시기를 빈다. 따뜻한 인사를 나누었더니 참 좋아하신다. 엉덩이 아프게 자전거를 타고 농원으로 내려왔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산소밭의 비닐을 벗기러 갔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만 한가할 때 얼른 정리해두고 싶었다. 가뭄 때문에 그런데로 깨끗했던 부직포도 걷기가 쉬웠지만 비닐도 잘 벗겨진다. 호미로 흙을 파내고 비닐을 채취해야 하는 곳은 몇군데 없었다. 그래도 거의 세 시간이 걸려서 8이랑을 작업했다. 해가 기울면서 멋진 노을이 흐른다. 충전기가 말썽을 부려 제대로 충전되지 않은 자전거로 8km를 왕복하느라 고생은 했지만 시원한 멜론을 후식으로 먹으며 가볍게 한바탕 놀았다.
오전 약속이 취소되어서 어제 남겨 두었던 비닐 벗기기 작업을 마저 했다. 다섯 이랑인데도 다 하고 났더니 제법 힘이 든다. 나머지 밭에서는 들깨가 잘 자라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아서 들깨꽃이 어떤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사진을 찍으며 관찰을 해야 하는데 일하다가 사진 찍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 그냥 눈으로만 잠깐 살펴본다. 점심을 먹고 마음이에 고추 말린 것을 잔뜩 싣고서 방앗간으로 갔다. 오랜만에 운동도 하고 은행일도 보고 났더니 4시가 다 되었다. 부랴부랴 대추를 땄다. 미국선녀벌레가 대추나무를 거의 점령해서 피해가 심했다. 농약을 뿌려서라도 싹 퇴치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지만 참기로 했다. 나마저 농약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음주에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야 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참 행복하다. 멋진 것을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힘들게 걷고,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여행이다. 제법 긴 여행들을 마치고 나면 이제 여행은 그만해도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또 든다. 이번 여행에는 가족들과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서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 행복한 상황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사치다. 행복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행복은 자제되어야 한다.
오늘(21일 수요일)은 하루 종일 외부활동이 없는 날이다. 마당에 풀을 뽑으려고 했는데, 어제 눈에 거슬렸던 논에 물대는 호스 거두기 작업을 하기로 했다. 정농께서 하시다가 풀에 걸리는 바람에 포기했다고 하셔서 낫까지 챙겨들고 호스를 걷으로 갔다. 논바닥의 진흙과 물, 풀이 장애물이다. 하나씩 여유를 가지고 슬슬 풀어나갔다. 원래는 그 자리에서 전부 갈무리해서 보관하려고 했는데, 진흙이 워낙 많이 묻어서 세척 작업을 해야겠기에 집으로 가져왔다. 커다란 물통에 물을 받으며 발로 밟아서 호스를 대충 씻고, 솔로 슬슬 문지르며 호스를 감아 나갔다. 처음에 작업한 가장 긴 길이의 호스는 작업 방식의 실패로 제대로 갈무리 되지 않았는데, 두 번째 호스부터는 요령이 생겨서 깔끔하게 작업을 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첫 번째 호스를 전부 다시 풀어서 세척도 한 번 더 하고 갈무리를 다시했다. 깨끗한 비료 포대 하나에 전부 챙겨 넣고, 마음이 세차까지 끝냈더니 12시다. 3시간이 넘게 작업을 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일을 해도 좋은 날씨지만 휴식을 하며 오카리나를 불었다. 책을 봐야 하는데, 노는 게 먼저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 조옮김을 하느라 쓸데없는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 다시 찾아봤더니 C key용 악보도 있었다.
세 시가 못되어 마당으로 나갔다. 어제 두 분이 작업하시던 벌통 옆 콩밭에 풀을 맸다. 처음에는 호미로 일일이 풀을 뽑아내며 작업을 했는데, 비가 온지 며칠이 지나서인지 땅이 딱딱해서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다. 콩 주변만 손으로 잘 뽑아주고 단호박 밭은 낫으로 베었다. 마을회관 앞 잔듸 정리 노역을 다녀오신 수천께서 오시더니 단호박도 전부 따라고 하신다. 풀숲에 숨어있던 단호박 십 여 개를 따를 바구니에 담고, 낫으로 쓱쓱 작업을 했다. 정말 더딘 작업이다. 예초기를 휘익 돌리고 싶었는데 계속 낫으로 작업을 했으니 마저 마치자 생각하고 천천히 해 나갔다. 6시가 다 되어서 일이 끝났다. 들어가서 샤워하고 쉴까 하다가 꽹가리를 들도 밭둑으로 올라갔다. 이것저것 쳐 보다가 휘모리 연습을 했다. 목표했던 마지막 주법 연습이다. 50% 정도는 완성했다. 이제는 시간이 문제다. 시간이 문제라는 것은 팔에 필요한 근육이 생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예체능이 왜 같은 내용의 훈련인가 하면 근육을 단련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음악, 특히 풍물은 몸에 근육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고 보면 꾸준하지 못한 연습이 장구를 위한 근육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해 자꾸 지지부진해진다. 대금도 마찬가지다. 가장 늦게 시작한 쇠가 가장 빨리 원하는 경지에 오를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