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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이야기

뱀에 놀라도 즐거운 가원이야기_210507~08 el ocho de mayo el sábado_восемь май Суббота

가원을 가꾼다고 해서 반드시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원의 날 행사를 위해 내려가는 도중에 그리미는 심장이 오그라드는 고통을 받았다. 천재와 나의 언쟁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가원의 날에 참여하고 싶다. 그러나 가원의 날이 자주 오기 때문에 대학원에 다니는 우리들로서는 일정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 일정이나 계획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결정을 해야지 아빠 마음대로 하면 어떻게 하냐. 뭐가 힘드냐,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며, 너를 키워 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공부는 평생 할 수 있다. 힘든 일은 아빠와 친구들이 다했다. 너희들은 집 외벽 칠하고, 돌 의자 만드는 것 말고는 뭐 했냐? 몸이 쪼그라드는 노동의 고통을 겪어는 봤냐? 급기야 음성으로 향하던 차를 산본역으로 돌려서 천재를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으나, 천재의 양보로 다시 음성으로 차를 돌렸다.

 

누나가 만들어 온 약식과 부침개로 저녁 간식을 먹고 책을 좀 보다가 leo un libro 11시 반이 되어 잠이 들었다. 바람이 거세고 날이 추웠다 hace mucho viento y frio.

 

7시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잠을 깼다. 그리미와 함께 정원에서 도라지와 바질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보다가 야외 샤워실 뒤쪽의 풀을 뽑았다. 8시 반이 되었다. 천재는 먼지 과민반응 때문에 약을 먹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새벽 세시 반까지 순전히 영어로만 된 논문을 읽어야 했단다. 아침을 먹고 가족들은 함께 고추 심으러 나가고, 나는 펌프 두 개를 들고 논으로 갔다.

 

비가 계속 내려 주었기 때문에 중력수인 지하수위는 충분하다. 먼저 절집 펌프를 연결하고 전기를 공급하니 잠시 후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급수관이었다. 도랑의 배수로를 정리하면서 우리 관을 깨뜨려 놓고 달아났다. 이장님께 연락해 봤지만 공사를 한 사람을 알 수가 없다. 깨어진 배수관과 세 차례에 걸쳐 씨름하며 한 시간을 넘게 소모했다.

 

반성하지 않은 잘못은, 작은 이익을 얻지만 결국 큰 벌로 돌아올 것이다.

 

두 번째로 논둑 펌프를 연결했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에 연결은 되었다. 물 다섯 통을 부었지만 아직도 물이 올라오는 소식이 없다. 물 네 통을 더 가져와 붓고, 다시 한번 연결을 시도했다. 적은 양이지만 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쪽은 확실히 수량이 적다. 주변 정리를 하는 동안에 그리미가 놀러 왔다. 두 시간 만에 고추를 다 심고 혼자 일하는 내가 심심할까 봐 왔다고 한다. 이런 것이 가원의 날의 기쁨이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뱀에 놀라서, 사료를 축내고 있는 고양이들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과연 뱀인지, 어머니는 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셨는지에 대해 그리미의 상세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와 함께 마음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즐거움을 누렸다. 송수관에서 나오는 물을 논으로 유도하는 호스를 가져오기 위해서다.

 

고추 심기를 끝낸 동생이 고추 지지대를 박고 있다는 소식에 그리미는 고추 묶는 끈을 들고 밭으로 달려갔다. 집안에서 쉬던 제수씨도. 천재는 여전히 약에 취해 자고 있고, 누나는 11시부터 시작한 정례 줌 세미나를 하고 있다. 나는 다시 논으로.

 

호스를 연결하면서 압력이 걸리니 깨진 송수관이 다시 터진다. 송수관을 손 보느라 또 30분이 흘렀다. 음, 하느님이 녀석을 벌하실 것이다. 모내기 마치고 시간을 내어 송수관을 사다가 교체해야겠다.

 

예초기를 매고 풀을 베었다. 환청이 들린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물이 차면 베기 어려운 논둑 아래 부분의 풀을 베어나갔다. 또 환청이 들린다. 그리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지친 몸으로 예초기를 돌리며 어서 빨리 동생이 초밥을 사 왔기를 기도했다. 왼팔이 너무 아프다. 자세가 나쁜 것인지 예초기의 무게 배분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깨에 보조선이라도 걸머질까. 친구가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나약한 녀석.

 

환청도 없이 그리미가 왔다. 고추 말목 작업도 거의 끝나고 점심 시간이 되었으니 집으로 가잔다. 그리미를 위해 뱀이 달아나도록 풀을 깎아서 안전한 논둑을 만들었다. 그리미는 그 길을 따라 흐드러진 쇠별꽃을 바라보며 그림처럼 움직여 온다.

 

동생은 아마도 다투는 모양이다. 12시에 예약한 초밥이 1시 반이 넘었는데도 도착하지 못했으니. 그 생각을 말로 표현했을 때 동생 부부가 돌아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한다. 평화로웠다. 초밥을 먹으며 어머니 요양 등급에 대해서, 휴직하고 장인어른을 간병하는 그리미의 노고에 대해서, 환경보호를 위한 화장실 짓는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각자 하고 싶은데로 하자 짧은 인생이다.

 

점심을 먹었으니 뭘 하고 놀까를 고민했다. 보드게임 준비를 맡았던 우주신이 연구 과제 마감에 쫓겨 연구실에서 퇴근을 못하는 바람에 차질이 생겼다. 아쉬운 데로 예전에 사무실 사람들이 하던 점심 내기 게임을 했다. "책 섯다". 도박은 안 하신다는 어머니까지 끌어들여서 게임을 흥미진진하게 진행했다. 배꼽 빠지게 웃으며.

 

맹동 성당을 가려다가 황사가 너무 심해서 그냥 일이나 잠깐 더 하기로 했다. 오후 5시에 천재를 비롯해 온 식구가 나가서 벚나무 아래 돌의자도 만들고, 고추 지주목 세우기도 끝냈다. 정말 많은 일을 한 것같고 지주목에 의지해 하늘거리는 고추가 너무 예쁘다는 제수씨의 노동 후 감상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일한 보람을 느끼는 것, 자연의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것이 가원의 날의 의의다.

 

예쁘게 자라던 더덕 줄기가 내 예초기에 희생되고 말았다. 슬프다.

 

고추나무 하나에 하나의 철근. 처제가 보내준 양말목으로 묶어주었다.

 

 

다섯 명이 달려들어 80%를 완성한 밪나무 아래 돌의자. 올 여름 시원한 휴식 장소가 되어 줄 것이다.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9일 어머니의 카톡글 : 잠잘마들어졋네앉아보니아주편안하고좋우네참잘만들엇어고마워윗치도아주잘앉앗어

 

토마토 지주대, 부디 많이 먹을 수 있기를, 신신하게

 

 

예초기를 돌릴 때마다 뭔가 하나씩을 잘라먹는다. 앞으로 정원에는 들어가지 않겠다.

 

신께서 우리 가족과 함께 하셔서, 부디 평화와 웃음이 가득하기를